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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8월 필자는 미국 MIT 화학과에서 박사후연구원 생활을 시작했다. 당시 필자에게 박사후연구원으로 오라고 제의한 곳은 MIT를 비롯해 스탠퍼드대와 하버드대까지 3군데였다. 이들 모두 이공계 분야에서는 세계적으로 톱클래스에 속하는 대학이라 결정이 쉽지 않았다.
하지만 필자의 연구 분야인 나노입자에 관해서는 MIT가 본고장이라는 점을 고려해 MIT에서 연구하기로 최종 결정을 내렸다. 특히 현재 필자의 지도교수인 문지 바웬디 교수는 1993년 세계 최초로 반도체 나노입자를 합성해 나노 분야의 서막을 올린 인물이다.
현재 바웬디 교수 실험실에는 18명의 식구들이 동고동락하고 있다. 자외선을 쬐면 크기에 따라 무지개색의 특정한 빛을 내는 반도체 나노입자를 기반으로 나노입자의 광학적인 특성을 연구하는 물리화학자부터 나노입자를 발광다이오드(LED)나 레이저 등에 응용하려는 재료화학자, 나노입자를 체내에 주입해 센서로 활용하려는 생화학자까지 다양한 전공의 학생과 연구원들이 나노입자의 ‘신천지’를 발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필자의 경우 한국에서는 서울대 화학생물공학부 현택환 교수님의 지도로 세계 최초로 균일한 산화철 나노물질을 개발하는 등 나노입자 합성 연구에 주력했지만 지금은 나노입자를 바이오 분야에 응용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최근 자성체 나노입자는 자기공명영상(MRI)을 통해 눈으로 보면서 동시에 약물을 전달하는 매개체로 사용되는 등 질병의 진단과 치료 연구에 많이 응용되고 있다.
한 가지 고무적인 사실은 나노입자 합성의 본고장이라고 할 수 있는 이곳 실험실에서도 나노입자, 특히 자석에 달라붙는 자성체 나노입자의 경우 서울대가 개발한 방법을 이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10여년 전만 해도 미국 수준에 한참 뒤떨어져있던 국내 나노기술이 이제는 어엿하게 세계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는 사실에 새삼 뿌듯함을 느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의 연구 환경에는 부러운 점이 많다. 세계에서 모여든 학생들이 저마다의 아이디어와 방법으로 공동의 목표에 접근할 때 나타나는 시너지 효과는 대단하다. 복도나 실험실 등 건물 곳곳에 설치된 화이트보드 주변은 깊이 있고 허물없이 토론하는 학생들로 늘 붐빈다.
또 MIT에는 개발된 기술을 상용화시켜 제품으로 만들 수 있는 벤처 시스템이 제도화돼 있어 대부분의 교수는 벤처회사를 한 두 개씩 운영하고 있다. 구체적인 동기를 갖고 연구 기술에 박차를 가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이다. 나노기술에 있어서는 최근 한국에서도 세계적인 연구 성과가 많이 나오는 만큼 이런 성과가 논문으로서의 가치를 넘어 우리 삶을 윤택하게 만들고 경제적인 이익까지 창출할 수 있는 상품으로 개발될 수 있는 제도가 마련되길 기대한다.
박종남 박사 서울대 화학공학부를 졸업한 뒤 동대학원에서 자성체 나노입자 합성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MIT의 다양성과 역동성에 무척 놀랐고, 일과 시간 이후에는 다양한 여가 활동을 즐기는 학생이 대부분이라는 ‘소문’과는 달리 밤늦도록 연구에 매진하는 학생이 훨씬 더 많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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