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선 제1회
자연과학대학 연구상을 수상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처음 설립된 이 상에 대해
잠깐 소개해주시고, 수상 소감도 간략히
말씀해 주십시오. 이 상에 대한 소개는 내가 해야할 것은 아닌 것 같고. 내 생각에는 무엇보다도 순수 기초과학 분야에 대한 중요성을 홍보하고 이를 장려하자는 취지일 것입니다. 이번 상에서 특징적인 것은 자연대에서 연구상과 교육상을 수여한 것입니다. 이전의 학술상과는 달리 대학내에서 행해지고 있는 교육과 연구활동에 초점을 두었다는 자체가 의미있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또한 동료들이 평가해서 상을 받게되었다는 데서 의미가 깊다고 생각됩니다. 전문가가 아닌 사람이 주는 상하고는 달리 자연과학을 연구하는 동료 교수들의 평가를 통해 상을 받게 되니 감회가 남다르더군요, 자연대에는 다른 분들, 다른 분야에도 저보다 더 훌륭한 분들이 계시는데 내가 이 상을 수상한 것에 대해선 내 자신은 우선 기쁩니다. 좀더 열심히 연구하라는 격려의 의미에서 주신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수상의
계기가 된 연구는 무엇인지요? 이와 관련된
연구 분야에 대해 소개해 주십시오. 연구상 수상은 최근 우리 연구실에서 발표한 논문에 대해 외국 두사람과 국내에서 두분, 전부 네분의 심사를 거쳐 이루어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우리 연구실에서는 용액 중에서의 화학반응에 관한 이론적인 연구를 수행해왔습니다. 용액 중에서 화학반응이 일어나면 분자들이 용액 안에서 확산운동을 통해서 반응하게 되는데 이 확산운동이 화학반응에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이러한 사실에 기반을 두고 우리 연구팀은 단순히 확산운동을 하는 것을 뛰어넘어 주변의 반응분자들간의 상관관계가 화학반응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에 관한 연구를 수행했습니다. 이는 기존의 화학자들이 규명하지 못했던 것으로 이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는 동역학 이론을 통하여 아주 체계적인 이론방법을 개발했습니다. 이것은 기존의 확산에 의한 이론적 방법보다 한 걸음 진보한 것으로 평가받았습니다. 게다가 우리는 이를 통해 기존의 화학자들이 예측하지 못했던 현상을 발견하게 되었지요. t-5/2 법칙이 바로 그것입니다 (필자는 연구실에 확대되어 붙여진 t-5/2 법칙의 로고를 볼 수 있었다). 기존의 연구에서는 농도가 시간에 따라 변할 때 t-3/2 법칙으로만 생각되었지만 실제로는 t-5/2 법칙도 존재한다는 것이 밝혀진 것이지요. 또한 이전까지 용액 중의 가역적인 화학반응을 체계적으로 연구하는데 어려움이 있었는데 우리가 개발한 동역학 이론을 통하여 이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일 수 있었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한편으로는 이론적인 체계를 확립하였고 한편으로는 새로운 현상을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이지요. 게다가 우리 연구팀은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방법을 개발하여 기존에 예측된 이론적 결과들을 확인하고 새로운 현상을 예측할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성과들은 이론화학 분야의 최고 수준의 저널인 Journal of Chemical Physics와 저명한 물리학 저널인 Physical Review Letters 등에 게재되어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이러한 연구는
어떻게 응용될 수 있는지 간략하게
설명해주실 수 있습니까? 이 질문은 첫 번째 질문과 관련지어 대답할 수 있겠군요. 나는 제1회 자연대 연구상을 순수 기초학문을 담당하고 있는 자연대에서, 그것도 이론적인 분야에 수여했다는 것에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자연대에서는 사실 순수 기초 연구와 응용 가능성이 있는 연구를 병행해서 수행해야 합니다. 요즈음 모든 것이 현실적인 기준에서 판단되고 있어 학문 연구도 응용 가능성 위주로 자꾸 생각하게 되는데 나는 그 자체에는 문제가 없다고 봅니다. 그렇지만 모든 사람이 그렇게 하면 곤란할 것입니다. 소수라도 일부에서는 순수 연구를 행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한 연구는 순수 이론 연구이고 이것은 장기적으로 파급 효과가 나타날 것입니다. 자연대가
세계적인 연구 중심 대학으로 발전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고, 교수님 역시 어려운
여건 하에서도 세계적 수준의 연구 결과를
내고 계시는데 실제 연구 여건에 대한
평가와 개선되었으면 하고 바라는 점이 있으시다면요?
실험 쪽에서 아쉬운 점이 많기 때문에 이론 쪽에서는 그렇게 많은 소리를 하기 힘듭니다. 물론 이론 쪽에서는 컴퓨터나 워크스테이션 쪽 관련 설비는 잘 갖추어나가고 있으며 연구 내용 자체는 최고 수준의 연구를 하고 있다고 자부합니다. 문제는 최고 수준의 연구를 하고 있는 학생들의 고생이 많다는데 있습니다. 제대로 학교에서 지원을 못하니까요. 미국에서는 학비나 생활비 등을 제공하고 있는데 이와 비교해 본다면 우리나라는 인력에 대한 지원이 너무 미비합니다. 물론 BK21을 시행하면서 그 부분이 어느 정도 해결될 것이라 봅니다. 그렇지만 BK21을 시행하면서 이에 필요한 재원을 마련하고자 기존의 연구비를 줄이고 이를 학생들의 생활비로 돌리고 있는데 이는 문제가 있습니다. 그러면 학생들의 생활비는 늘어나지만 연구비가 줄어들게 되는 기형적인 지원이 되는 것이지요. 학생들에 대한 지원은 별도의 재원으로 했어야 했는데, 그런 것이 아니라 기존의 연구비 재원을 모아 일부 대학에 집중 지원하기 때문에 우리 대학에서도 연구비가 크게 줄어들었고, 전국적으로는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이론이고 실험이고 가장 부족한 부분은 바로 박사후 연구원(Postdoc) 제도입니다. 외국에서는 2-3 명씩 데리고 연구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사람도 여의치 않고, 이를 지원할 재원도 없었죠. BK21에서 박사후 연구원을 교수당 한명 정도 지원한다고 하는데, 문제는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이 제도가 정착되어 있지 않아 박사후 연구원 시장이 잘 형성되어 있지 않습니다. 연구할 수 있는 인적 자원이 많지 않은 것이지요. 인력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하셨는데, 앞으로 중요 연구
인력으로 자라날 학생들에게 이론화학
분야에 대해 해주실 말씀이 있으실 것
같습니다. 이론을 전공하려면 준비해야 할 것이 많습니다. 예를 들어 이론화학이면 수학과 물리학, 화학에 대한 탄탄한 기초가 필요합니다. 이 과정은 많은 시간이 걸리고 또한 상당한 어려움을 극복해야 하기도 합니다. 내가 보기에 중요한 것은 고생이 큰만큼 성취감이 크다는 것입니다. 요즘 학생들이 너무 쉽게 빠져나가려고 하는 경향을 보이는 것은 불행한 일입니다. 실제로 그런 분위기가 많이 있으며, 뭔가 재미나는 것을 빨리 얻으려고 하는데 빨리 얻는 재미라는 것은 그리 큰 재미가 아닙니다. 충분히 고생 끝에 얻는 그런 것이 큰 기쁨인 것입니다. 서울대학교의 우수한 학생들은 어려움을 기피하지 말고 도전하는 정신으로 공부하는 게 필요합니다. 우리 학생들에게 어려움을 극복하고 이를 이겨내겠다는 도전적인 분위기가 부족한 것이 상당히 아쉬운 점입니다. 마지막으로
인터뷰를 마치시며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어떤 것이 있겠습니까? 최근 기초과학계에는 이전과는 다른 위기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요즈음은 학생들의 의식뿐만 아니라 일반 사회의 의식도 당장 투자 효과를 얻을 수 있는 것만을 생각하고 있는데, 이는 불행한 일입니다. 기초과학이 투자 효과가 적다고 해서 이를 하지 않는다면 언제까지 외국에만 의존할 것입니까? 우리 과학계가 스스로의 실력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기초과학이 튼튼해야 할 것입니다. 외국은 기업체들조차 이론화학자와 이론물리학자들을 채용해서 마음껏 연구하게 합니다. 장기적인 안목으로 크게 보아야 하는데, 우리 기업체들은 이러한 장기적인 안목과 여유가 아직 없다는 것은 불행한 일입니다.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정부에서 기초과학을 지원해야 합니다. 한번 무너지면 이를 제대로 세우기가 너무 힘들기 때문입니다.
(인터뷰:이두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