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들어가며
오랫만에 글 올리네요 ^^
지지난주에 워싱턴 DC에서 열린 ASAIO (American Society of Artificial Internal Organs) 학회에 참석하고, 이어 지난주에 선형 오빠가 계시는 미네소타에 다녀왔습니다.
워싱턴은 출장이었고, 미네소타는 자비를 들여서 여름 휴가 1탄으로 다녀왔어요.

1. 학회 소개 및 참석 동기
ASAIO 학회는 말 그대로 인공 장기에 대해 다루는 학회입니다. 주로 내용이 인공 심장 시스템과 그에 쓰이는 펌프에 집중되어 있고, 그 외에 신장 투석 장치, 인공 간, 인공 폐 등에 대한 발표도 있었습니다. 당연한 얘기지만 모두 혈액에 직접 접촉하는 장치이기 때문에 혈구 손상 및 혈액 기능 상실에 대한 평가가 중요한 변수이고, 그에 따른 CFD 연구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아시다시피 제가 와서 머무르고 있는 실험실도 인공 심장을 연구하는 곳입니다. 이곳에서 비교적 가까운 워싱턴에서 해마다 개최되기도 해서 이 실험실에는 주요한 학회 중 하나 입니다.
제가 이곳에 도착했을 때는 논문 제출 기한이 이미 지나기도 했고, 인공 장기 연구에 대한 전반적인 분위기를 익히기에 가장 좋은 기회라 생각되어 발표는 하지 않고 교육 목적으로 참석했습니다. 저의 주된 관심사는 펌프 내에서 혈액 기능 상실에 대한 평가 부분이었지만, 사실상 '이 동네는 뭐 연구하나' 보러 간 것이죠.

2. 학회 내용에서 느낀 점
우선 처음 느낀 인상은 당연한 이야기지만 전반적으로 기계적인 학회라는 것입니다. 기계 설계 등에 대한 설명이 많았는데 단면도를 봐도, 전체 구조도를 봐도 한 눈에 잘 안 들어와서 좀 곤란하더군요. 기계에서 얻은 각종 hemodynamic 데이터를 소개할 때에도 익숙하지 않은 변수들 때문에 줄거리를 금방 따라잡기가 조금 어려웠습니다.
두 번째는 혈액 손상에 대한 시선의 차이였습니다. 기계적으로 효율이 좋은 인공 장기를 개발한 뒤에도 혈구 손상 문제 때문에 좌절하는 경우가 많다고 하지요. 그래서 혈구 손상의 원인에 대한 연구가 나름대로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는데, 주안점이 기계의 효율에 놓여있다 보니 주로 혈액 테스트 결과를 이용할 뿐 원인에 대한 연구는 거의 보이지 않았습니다. 혈구 손상에 영향을 미치는 각 인자들과 용혈 정도에 대한 지배 방정식을 만들고, 그것을 다시 거꾸로 기계 설계에 응용하려는 노력이 있는 듯 합니다만, 이 학회의 주류는 아닌 것 같더군요.  펌프가 수천 rpm 으로 작동하고 내부 유동이 매우 복잡하기 때문에 적혈구를 관찰하기 보다는 순환 후 혈액의 물성을 측정하여 비교하는 점도 다른 점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배운 점은 현재 사용되거나 개발되고 있는 인공 심장 펌프의 종류에 대한 전반적인 개괄이었습니다. 여기서 따로 저기서 따로 듣다가 한 눈에 보니 계보도가 좀 그려지더군요. 인공 장기에서 일반적으로 혈액 손상을 평가하는 데에 쓰이는 변수의 종류와 조건에 대한 감도 잡았고요.

3. 그 외 느낀 점
학회에 참석하는 주요한 목적 중의 하나가 '비지니스'인데, 이번 학회에서는 그런 부분이 많이 부족했습니다. 일단 제가 아는 게 부족하고 내세워 보여줄 연구가 없으니 어찌 할 수가 없더군요. 이 실험실에서 참석한 다른 사람들도 각자 필요한 대로 돌아다니느라 도움을 못 받았고요. 관계의 확장을 위한 '응결핵'이 필요하다고 느낀 시점이었습니다. 제 소양이 충분하다면 스스로 될 수도 있겠지요.
그리고 이 학회가 인공 심장 펌프에만 너무 집중되어 있어서 아주 좋은 학회는 아니라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곧 성식 오빠가 참석하실 ASME bio conference나, 가을에 열리는 BMES(biomedical eng. society) 학회는 의공학 전반에 대한 내용을 폭넓게 다루는데 비해 이곳은 시야가 좁다고요. 제가 BMES에 참석하겠다고 했을 때는 약간 막연한 생각이었는데, 성경에 나오는 말이지만 '참 좋은 몫을 택했다'는 말이 떠올라 다행이라 여겼습니다. ^^

4. 워싱턴 관광
2박 3일의 빠듯한 일정이라 별다른 준비 없이 갔는데, 학회 첫날 이곳 지도 교수인 안타키 교수가
20달러, 10달러, 5달러, 1달러 지폐의 뒷면을 각각 보여주면서 여기 다 보고 돌아가라고 하더군요. ^^ 하지만 역시 시간이 거의 없어서 학회에서 만난 우리나라 분들과 둘쨋날 밤에 국립 극장에서 뮤지컬 '맘마미아'를 보고, 마지막날 오후에 백악관을 멀리서 잠시 구경하는 것으로 만족했습니다. 바로 앞 국립 미술관에서 뚤루즈 로트렉 작품이 150점이나 전시됐는데 차가 막혀서 못 간 게 정말 아쉽네요. 기회가 된다면 각종 미술관과 박물관이 끝이 안 보이도록 늘어서있는 'The Mall'을 3박 4일 일정 정도로 다시 가보고 싶습니다. 사진은 극장 앞에서 찍은 거예요.

5. 미네소타 방문
ASAIO 에 다녀온 다음날 비행기를 타고 미네소타 주립대가 있는 미니아폴리스로 날아갔습니다. 특별히 여름 휴가로 계획했던 것은 아닌데, 여기 온지 얼마 안 됐을 때 과 동기인 곽현욱이랑 김현우, 선형 오빠도 만나고 오면 좋겠다고 단순하게 생각해서 준비한 여행이에요. ^^;
퀄 테스트를 방금 마친 현욱이가 이것저것 일정을 준비해줬는데, 하필 마코스코 교수가 주관하는 유변학 숏코스와 일정이 겹친 데다, 1년에 그때 잠깐 온다는 토네이도와 만나는 바람에 선형 오빠 얼굴도 한 번 밖에 못 보고 화공과 건물만 실컫 구경하다 왔어요. 선진 언니랑 정숙 언니가 여기서 생활하셨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 쿠마 교수와 잠깐 마주쳤는데 저를 알아보길 기대하는 게 무리겠죠 ^^; 선형 오빠는 아주 잘 지내시는 것 같았고요. 어찌나 반갑든지요. 사흘 동안 잘 쉬고 돌아왔습니다.

6. 고대 인공 장기 센터 분들의 피츠버그 방문
미네소타에서 돌아온 다음날, ASAIO 학회에 참석하셨던 고대 인공장기 센터 분들과 서울대 의공학과 분들이 이곳 피츠버그를 방문하셨습니다. 주된 목적은 안타키 교수가 개발한 Streamliner라는 펌프에 대한 정보와 이곳 연구실의 연구 내용을 알기 위한 것이었고요. 그 외에 안타키 교수의 소개로 공동 연구하는 다른 실험실도 방문했습니다. 제가 하루 종일 따라다니면서 안내를 했고요.
우선 안타키 교수의 철저한 준비에 저 역시 감동을 받았습니다. 실험실 개괄에 대해 안타키 교수가 한 시간 동안 프리젠테이션을 한 뒤, 연구실과 실험실을 돌아다니면서 포닥, 학생 개개인들이 모두 자기 컴퓨터에서 10분에서 20분씩 프리젠테이션을 했습니다. 사실 처음 안타키 교수가 학생들에게 지시한 것은 자기 자리 청소, 단기 및 장기 계획, 5~10분 분량의 실험 데모, 5분 분량의 프리젠테이션, 30초 분량의 엘리베이터 스피치였답니다.
인공 장기 센터에서 오신 분들이 이곳 연구실과 거의 비슷한 연구를 하시니 굉장히 오랫동안 질문을 주고 받으시더군요. 앞으로 좋은 연결 고리가 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7. 마무리
이제 이곳에 온 지도 만 넉 달, 기약한 시간의 1/3 이 지났습니다. 학회 출장 사흘 + 휴가 사흘 + 실험실 안내 하루 = 도합 일주일을 정신없이 지나보내고 나니, 이곳 생활의 첫 스텝을 마무리할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처음 두 달은 여기서 무슨 연구 하나, 내가 어떤 부분을 맡아서 무슨 공부를 해야하나 책 읽고 논문만 들이 파면서 지나갔고... 다음 두 달은 공부한 것을 바탕으로 실험을 디자인하고 미팅을 통해 계속 깎고 다듬고 버리고 다시 만들고... 그 결과 이제서야 실험 프로토콜이 작성되어서 예비 실험을 앞두고 있습니다. 말하지 않아도 시간은 귀한 것이지만 이곳에서의 시간은 1분 1초가 더 아깝네요. 조급한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그런 것은 도움이 되지 않겠지요.
공교롭게도 다음에 참석할 BMES 학회가 10월 초라, 앞으로 다시 1/3이 지난 뒤에 이런 글을 다시 올리게 될 듯 합니다. 그때 가서 어떤 내용의 글을 쓰게 될 지는 지금부터 만들어가야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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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형: 엘리베이터 스피치라... 중요하단건 알고 있었지만, 그걸 준비하라고 한건 인상적이네...  -[06/21-06: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