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아영이가 적은 것과 같이, 12월 11일-12일 양일간 열린 동경대-서울대 화공과 교류 세미나에 다녀왔습니다.
주최 측의 설명에 의하면 작년에 우리 학교에서 처음 행사가 열렸고 올해가 2회째이며, 교수님들이 아닌 학생들이 주도해서 진행하는 행사라는 데에 의의가 있다고 하더군요. 전체 랩에서 한 명씩 발표하기 때문에 서로 어떤 연구를 하는지 개괄하기에 아주 좋은 기회이면서, 밤새 술푸고 망가지면서 학생들끼리 친해지기도 좋은 재미있는 행사였지요.
단일 학부에서 참가한 우리 학교와 달리, 동경대에서는 화학 관련 4개 학과가 모두 참여했습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Processing 관련 연구실이 동경대에는 없더군요. 재료 관련 연구가 대부분이었습니다. 그 덕에 만만하게 여겼던 포스터 발표가 꽤 재미있어졌죠. 저는 Extensional rheometry of wormlike micellar solution 이란 제목으로 포스터를 발표했는데, extensional 과 rheometry 라는 말을 아는 사람이 열 명 중에 한 명도 없는 거였습니다. 점도가 뭔지 관심없는 사람들에게 심지어 신장 점도가 왜 필요하며 왜 측정이 어려운지를 설명하는 것은 상당히 challenging한 일이었죠. 결론은 "당연하게 여기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지 말지어다" 였습니다. 내가 하는 연구의 본질을 더 멀리, 그리고 깊이 생각해야 한다는 거죠. 일본 학생들의 발표 뿐 아니라 우리 학부의 다른 학생들 발표를 들을 때도 마찬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분야에 초심자인 것이 분명한 저를 앞에 두고 "업계 용어"를 늘어놓는 것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그게 왜 필요한지, 기존의 다른 연구와 무엇이 다른지를 설명한 발표 앞에서 내용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었고 더 가치를 느꼈습니다.
오럴 발표는 다른 점 때문에 흥미로웠습니다. 흔히들 일본 사람들 영어 못 한다고 하는데, 제가 보기엔 (어차피 잘 모르는 분야의 발표라고 생각할 때) 일본 사람들 발표가 더 알아듣기 좋더군요. 그 이유는 일본 사람들의 경우 발음은 상당히 안 좋을지언정, 문법과 표현이 정확했기 때문입니다. 실용 표현에도 강해 보이더군요. 발표 자료를 시각적으로 잘 구성한 상태에서 큰 소리로 또박또박 말하자 발음은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았어요. 반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발음은 술술 굴러가는데, 뭐랄까, 너무 굴린다는 느낌이었어요 ^^;
어쨌거나, 말씀드린 대로 제게는 생소한 연구가 많았기 때문에 시선을 넓힌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들었습니다. 저와 같은 처지의 대학원생들이 발표한다고 생각하니 더 애정을 갖고 집중해서 지켜본 것 같아요.
세미나는 둘쨋날 오전까지 진행되었고 오후엔 학교 투어를 했습니다. 아영이도 적었지만 동경대 캠퍼스가 참 예뻐요. 제가 가본 곳 중에 하버드 다음으로 예뻤습니다. 고색창연한 건물들 사이로 잔디밭과 숲이 곳곳에 잘 가꾸어져 있습니다. 동경대 상징에도 은행잎이 그려져 있는데, 학교 어딜 가나 커다란 은행 나무가 예쁘게 늘어서 있습니다. 거긴 이제 단풍이 드는 따뜻한 날씨라 온세상이 노랬죠. 은행 열매 냄새는 좀 괴로웠습니다만...
하지만 그 와중에도 공대 건물은 역시나 구리더군요. 어느 학교를 가나, 아무리 캠퍼스가 예뻐도 꼭 공대 건물은 구질구질한데 그 이유를 아직 모르겠습니다. 기능성을 생각해서 그런가 하면 꼭 그다지 기능적이지만도 않고...
연구실 시설은 의외로 실망스러웠습니다. 촉매 관련 연구실들을 돌아봤는데, 세계적으로 잘 나간다는 랩 치곤 시설이 참 구리더군요. 온갖 유독성 화학 물질을 다루는 랩에서 80년대 유리창처럼 생긴 후드를 쓰는 걸 보고 솔직히 놀랐어요. SWNT를 최고 속도로 뽑아낸다는 랩도 가보면 온갖 낡은 장비로 들어차서 발 디딜 틈이 없고... 결론은 human resource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행사를 통해 동경대 학생들과 정말 친해졌느냐고 물으신다면 그렇다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연구 면에서는 일단 서로 하는 일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는 게 큰 출발이었고요. 아무래도 밤새 망가지고 술 푸면서 많이 친해졌죠. 서로 영어가 그렇게 능하지 않다 보니 그다지 심각한 얘기는 못 하고 온갖 시시껄렁한 얘길 하면서 떠들었는데, 그게 은근히 재미있더군요. 여럿이 모여 술 먹을 때 술 들이붓고 시끄럽게 노는 건 그 친구들도 마찬가지더라고요. 많은 학생들과 연락처 교환하고 메일을 주고 받게 되었는데, 내년에 서울에서 다시 볼 수 있을까 은근히 기대가 됩니다.
처음 먹어본 일본 맥주가 은근히 맛있는데다가 달콤한 사케가 절 유혹하는 통에 저도 오랫만에 많이 마셨는데, 그래놓고 둘쨋날 오전 오럴 발표에서 좌장을 해본 것도 재미있는 경험이었어요. 우리 학부 체면도 생각해서 술 핑계로 실수할 순 없다는 생각에 정신 바짝 차리느라 엄청 애썼는데, 테 안 내는데 성공했나 봐요. 술 그렇게 먹고도 멀쩡하다고 쓰고이 소리 들었어요. 흐흐.
교류와 친교가 주요 목적인 행사였다 보니 세미나도, 여행도, 유쾌하고 즐거운 경험이었습니다. 보내주신 두 분 교수님과, 나흘 내내 손발 잘 맞아서 더 재밌게 해준 아영이에게 감사드립니다. 처음 가본 일본 유람도 꽤 재미있었는데, 내일 발표 시간에 사진과 함께 이야기드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