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 첫 외국여행, 외국친구들, 학회발표 였습니다
누구보다도 큰 기대를 가지고 준비된 마음가짐으로 상하이 푸동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세계가 중국에 있었습니다. 중국전통문화 (음식, 집, 패션) 가 있었고, 한때 침범했던 유럽열강의 흔적이 있었고, 최근 도시화, 근대화의 영향을 받은 미국, 일본, 그리고 한국이 있었습니다.

Shanghai seems to be similar to Seoul, but they are slightly different
중국인친구가 상하이에 대한 인상이 어떻냐는 질문에 대답했습니다. 이 질문은 꽤나 많이 받은 것 같습니다. 중국인들은 상하이가, 또 중국이 외국인의 눈에 어떻게 비춰질 지가 꽤나 궁금한 모양이었습니다. 상하이에는 모든 것이 공존합니다. 그중 반은 서울과 닮아 있고 반은 서울과 다릅니다. 최신식시설, 고층빌딩은 서울과 같지만 지키지 않는 신호, 아주 조용한 이른밤의 거리는 서울과 다릅니다.
중국은 전통을 지키고 있었고 또한 변하고 있었습니다. 지은 지 몇백년이 된 이름난 정원들, 이름을 다 외우기도 힘든 특이한 요리들, 그와 공존하는 선진국수준의 물가를 달리는 최고급백화점, 끝이 보이지도 않을 고층빌딩들.
최신식 시설과 뒤쳐지는 의식이 공존했습니다. 깨끗하고 넒은 지하철, 그렇지만 한줄서기가 이루어지지 않는 에스컬레이터. 넓은대로에 많은차들, 그렇지만 전혀 신호를지키지 않는 차와 사람들 여기저기서 울리는 자동차경적소리.
낮에는 엄청나게 많은 차들과 사람들 상점들로 북적거립니다. 하지만 10시면 거의 모든 상점이 문을 닫고 사람들도 거의 없습니다.
중국은 후진국도 선진국도 아니었습니다. 후진국에서 선진국으로 변화하고 있는, 시대가 넘어가는과정의 중심에 서있는 나라를 제 눈으로 직접 보았습니다.

친구들
의식이 달랐습니다. 일본인 친구들은 상대적으로 말이 잘 통하고 농담을 많이 할 수 있었습니다. 노는 문화나 생활습관도 비슷했고 서로를 잘 이해했습니다.
중국친구들은 전혀 때묻지 않았고 진심을 다해 성심껏 손님을 맞이하고 돌봐주었습니다. 도움을 청할 땐 물론이고 도움을 거절했을 때조차 계속 도와주었습니다. 한국에서 그런 친구들이 있었다면 분명 ‘부담스럽게 왜 저래’ 라고 했을 정도 입니다. 솔직히 처음엔 그 친절이 익숙치 않아서 거부감이 들고 또 귀찮기도 했습니다. 하루, 이틀이 지나자 깨달았습니다. 중국인에게만 있는 친절 또한 시대를 반영하고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중국인들도 일본인이나 한국인처럼 되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과잉 친절하지 않고 적당히 사람을 대하며 다른 사람들에게 너무 헌신적이어서 이상해 보이지 않는 그런 친구들이 될 수 있겠다라는.
시간이 흐른 뒤의 중국인친구들이 매우 궁금해졌습니다.

10년 후의 모습이 궁금해지는 나라 중국
일본이나 미국에 갔다면 이런 느낌은 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중국은 변하고 있었고 그 어느 나라에서도 보지 못할 신기하고 어색한 모습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급작스러운 변화는 과거와 미래를 공존하게 했고, 바로 지금, 중국에서가 아니면 볼 수 없을 장면을 연출했습니다. 10년후 에는 어떤 모습으로 변해있을지, 사람들의 의식은 어떻게 바뀌어있을지, 소위 말하는 후진국에서 선진국으로 변하는 과정을 고스란히 내 눈으로 볼수 있다는 사실이 소름끼쳤습니다. 중국은 저의 예상대로 변해있을수도 있지만, 저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어 있을 확률이 훨씬 높습니다. 엄청난인구수, 누구보다 빠른발전속도. 변화할중국도 기대되지만 한편으로는 지금가지고 있는중국인들의 때묻지 않은 따뜻한 마음씨가 아쉬워지기도 했습니다.

학회
학회를 여러 번들어본 경험은 있지만 발표를 해본 것은 처음이었고 또한 오랄발표자중 유일한 무경험자였기에 심리적인 부담이 매우 컸고, 기대 또한 컸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사항은 자신감이었습니다. 저의눈에는 앞서한 우리 실험실의 선배들이 한중일태국 모든 발표자들중 제일 잘해보였고 이는 저에게 부담이었지만 한편으로는 또 자신감을 갖게 해주었습니다. 나도 저렇게 할수있다. 앞에서있는 순간만큼은 내가 준비한 것을 여김없이 보여주자 라고 마인트컨트롤을 한뒤 발표를 했습니다. 생애 첫 학회발표에 앞에 나가서 바라본, 나를 보고 듣고 있던 청중의 눈빛은 잊지 못할 것입니다. 아쉬운점은 아직 그렇다할 연구결과가 없어서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것과, 질문을 제대로 못 알아들은 점입니다. 거의 처음으로 아시아영어를 접했는데 미국식영어보다 훨씬 알아듣기가 힘들었습니다. 영어실력을 키워야 한다는 생각을 뼈져리게 몸소 느꼈습니다.
네 나라중에 단연 우리 실험실이 돋보였던 것은 저만느낀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작년에 학회를 다녀온 선배들의 말을 들었을때는 우리가 일부 뒤쳐진면이 있다고 들었지만, 제눈으로 본 우리실험실의 발표는 아시아를 이끌어나가고 있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이곳에 속해있다는 것이 뿌듯했지만 한편으로는 나는 우리실험실에 뒤지지 않는 발표를 했나 라는 반성을 하게 했습니다.

유변학 – 경쟁자이자 동반자

아직 과학에 대한 정부의 지원이 많은 비율을 차지하지는 않지만 엄청난 인구를 자랑하는 중국이니만큼 유변학에서도 뛰어난 발전을 이루었고 또 그속도는 앞으로 더 빨라질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지금은 우리나라의 유변학이 아시아에서 만큼은 어느곳에서도 뒤쳐지지 않고 이끌어 나간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중국은 엄청난 속도로 성장할 것이고 그들의 학문수준은 지수적으로 발전할것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에맞서 경쟁해야 하고 또한 아시아의 유변학을 발전시키는 동반자로써 끊임없이 교류하고 배워야 합니다.

비행

외국으로의 첫비행이니만큼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해보지 못한 경험을 했습니다. 자리가 따로 떨어지는 바람에 모르는 사람과 앉게 되었고, 우연히 대화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50대의 아저씨는 전세계에서 사업을 하신다고 했습니다. 이번에 중국에 새로 공장을 짓게 되었고, 말레이시아 등 아시아의 곳곳에, 또 아프리카에도 사업을 하느라 한국에는 한 달에 5일정도만 머무르신다고 하셨습니다.
「아프리카에서 처음에 사업을 결심하셨을 때 겁나지 않으셨어요? 」
「아니요 전혀요
사람은 다 똑같아요. 내가 진심으로 대하고 신뢰를 주면 세계 어디서든  그 사람은 날 믿어주고 따라와줍니다. 그게 아프리카이든 미국이든 사람은 다 똑같아요. 세계를 돌아다니며 일을하려면 이런마인드 없이는 못하죠」

「우리 젊은친구들이 세계를 많이 돌아다녀야 해요. 우선 내 세대에 기반을 닦았으니, 이젠 어딜가도 한국인이라면 대접을 받게 되었으니까요. 처음엔 한국인이라면 아무도 모르거나 무시당했거든요. 계속 한국을 세계에 알려야 해요. 우리 젊은인재들이 많이 세계를 돌아다녀야죠. 」

「일이 재밌으신거 같아요」
「네 재밌어요. 재미없으면 못하죠. 그냥 나는 10만 일자리를 양성하자가 내 목표였어요. 세계 어디서든 일자리가 없는 사람들에게 일할 수 있는 곳을 만들어주는, 지금은 어느 정도 그 목표를 이룬셈이죠. 학생은 나보다 훨씬 큰일을 해야죠. 나는 지는 세대고 학생은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으니까. 100만 1000만을 먹여 살릴 수 있는 연구를 하세요. 인류를 위해 공부하세요.^ㅡ^」


실험실에 온지 고작 1년이 지났다고 이제는 안주하려는 생각을 한 저에게 충격을 준 중국여행, 친구들, 비행기에서의 대화였습니다. 학회를 통해 나의 연구결과에 대해 돌아보았고, 중국을 통해 무한한 발전가능성과 세계를 보는 넓은 안목을, 친구들과 아저씨로부터 진심, 신뢰, 꿈을 향한 열정을 배웠습니다. 지금이 아니면 배우고 느끼지 못했을 것들, 놓치지 않게 기회를 주신 교수님들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