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토대 출장을 다녀와서.


안녕하세요. 지난 5개월간 일본 교토대 Watanabe 교수님 실험실(Laboratory of Molecular Rheology) 에서 Dielectric Relaxation Spectroscopy(DRS) 에 관한 연구를 진행하고 온 이아영 입니다. 새로운 연구 분야를 접한다는 것, 새로운 나라의 문화를 접한다는 것들에 대한 긴장감, 부담감, 그리고 부딪혀 보자는 조금의 당돌함을 가지고 5개월 전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1. 교류

벌써 3번의 한중일 workshop을 가진 터라 Watanabe 교수님 실험실과는 상당히 돈독한(?) 관계에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교수님들뿐만 아니라 학생들간에도 어느 정도 안면과 친숙함이 있었기에 그곳 실험실에 적응하기가 한결 수월하다는 생각과, 그럴수록 더욱 성실히 연구하고 생활해야겠다는 다짐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협력관계가, 교류가, 저뿐만 아니라 우리 실험실에도 하나의 자산이 될 테니까요.  


2. 분위기

A. 느낌
‘Japan’ 그리고 ‘Watanabe lab.’

제가 소속된 곳은 교토대 중에서도 가장 고즈넉한 느낌의 Uji campus였는데, 제가 일본! 하면 떠올랐던 자전거문화, 친절함, 깨끗함 등을 모두 갖추고 있었던 곳이었습니다. 밤에는 인적이 끊겨 그야말로 researcher 뿐인 곳(실험실 친구의 말을 빌리자면)이라고도 할 수 있을 정도로 처음엔 퇴근길이 약간은 무서웠습니다. 나중에는 익숙해져서 더욱 으슥한 지름길로도 잘 다녔지만요.

일본인은 영어를 잘하지 못한다는 편견과 달리, 제가 소속된 실험실 학생들은 어느 정도 영어실력을 갖추고 있어서 의사소통 면에서 큰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내가 좀더 영어를 잘했더라면 교수님과의 discussion도, 제 의사표현도 좀 더 분명히 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은 남습니다. 저 또한 틈틈이 일본어 공부를 하면서 친구들과의 대화에서 소외되지 않으려고 노력했습니다. 내가 머무는 곳의 언어를 조금이나마 구사할 수 있느냐의 여부는, 영어권 국가가 아닌 이상 자신이 생활하는 데 커다란 플러스가 되는 것 같습니다.  

B. 연구
‘자신의 패턴에 따라 효율적으로!’

이곳 실험실 한쪽 켠에는 Watanabe 교수님만의 실험 공간이 따로 있습니다. 학생들이 그곳은 남겨두고 사용하지요. 아직도 교수님께서는 직접 실험, 연구하시고, 논문도 쓰십니다. 학생들도 교수님을 본보기 삼아(?) 매일 늦게 퇴근하고 열심히 합니다. 늦게까지 있는다고 모든 시간을 연구에 할애하는 것은 아니지만, 일하다가 간단히 맥주 한 잔도 모두 실험실에서 해결합니다. 일부 전해 들었던 여타 실험실과는 달리, 상호 유대관계가 원만한 친구들이었습니다. 저에게는 이런 실험실에서 생활할 수 있었던 것이 상당한 행운이었습니다.

교수님께서 워낙 바쁘시기 때문에, 연구에 대한 discussion 을 하고 싶으면 먼저 찾아가야 했습니다. 또, 총 네 분의 교수님이 계셨기에 내가 조금만 부지런히 연구하고 질문을 한다면, 많은 도움을 얻을 수 있는 여건이었습니다. 저는 dielectric 에 대한 실험연구를 하고 있었던 Chen 이라는 중국인 박사학생에게 새로운 분야였던 DRS 에 대한 concept 을 잡는 데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준비가 된 학생들에게 학회 발표와 참여가 주어지는 시스템 또한 학생들이 연구에 최선을 다하도록 하는 자극제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정규적인 미팅이나 세미나가 없음에도 자발적으로, 열심히 연구하는 친구들을 보면서 저 역시 많은 자극과 도전 의식을 받았습니다. 또, Matsumiya 여교수님을 뵈면서 나도 저분처럼 논리적인 결과들을 가지고 publish를 많이 하고 싶다는 욕심도 가져보았습니다.    

C. 태도
‘마음만 먹으면, 연구만 할 수 있는!’

비서 분께서 같은 공간에 상주하시며 행정적 업무를 봐주시기 때문에, 연구 이외의 것은 거의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는 시스템이었습니다. 회식도, 쉬어가는 맥주 한 잔도 참 좋아하는 친구들이었는데 그래서인지 연구뿐만 아니라 모든 활동에 있어서 적극적인 모습들이었습니다. 스스로의 마음가짐만 있으면 다른 부수적인 것들은 제외하고 연구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좋았습니다.

일주일에 두 번, 정해진 요일에 쓰레기를 버리고, 두 달에 한 번씩은 실험하며 모아둔 쓰레기를 버립니다. 제법 엄격하고 때론 일손이 많이 필요 하는 데, 모두들 연구를 잠시 중단하고 참여합니다. 가연성 물질, 플라스틱, 유리, 금속류 등 평소에 분리수거를 생활화해서 당일은 모아서 버리기만 하면 되었는데, 체계화된 질서 문화가 잘 정착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D. 성과      
‘마인드’

Watanabe 교수님과 discussion 을 하면서, 논리적으로 사고하고 논리적으로 기술하는 것에 대한 'mind' 를 배웠습니다. equation 으로 기술하기 전에, 가장 근본적으로 현상에 대한 그림을 그릴 수 있었는지 내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새로운 분야를 접하는 것이고, 우리실험실과 교토대에서 지원을 받아 생활한다는 마음에 결과에 대한 조급한 마음이 들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처음 몇 주 동안은 ‘Broadband Dielectric Spectroscopy’ 라는 두꺼운 원서를 읽으며 이론공부를 먼저 하였는데, 공부를 하면서도 빨리 실험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체 개조된 장비의 특성상 온도 control 을 위해서는 3-4시간, 상온이 아닐 시에는 12시간 이상의 기다림이 필요했기에 보통 하나의 시스템으로 실험을 진행하려면 일주일 full time 으로 한 사람이 장비를 예약합니다. 제가 방문하였던 4,5월이 한참 장비 예약이 밀려있어서 처음에는 주말이나 달력의 빨간 날을 골라서 실험을 예약하곤 했었습니다. 알맞은 실험조건을 잡고 진행하는데 시행착오가 있어서 그런 부분에 시간을 할애했던 것이 아쉬웠지만, 다음부터는 좀 더 치밀하게 실험 계획을 세워야겠다는 교훈도 얻었습니다.

앞으로 우리 실험실에서 저와 같이 장기출장을 갈 경우에는 그전 연구과제에 대한 정리와 앞으로 실험을 진행할 샘플 문제 등을 조금 명확히 정리하고 간다면, 좀 더 효율적으로 연구에 매진할 수 있을 것입니다.


3. 마치며

사람 사는 곳은 어디나 다 비슷한 것 같습니다. 시행착오를 하면서 부딪히다 보면, 성장하고 깨닫고 배우는 것 같습니다. 외국인 기숙사에서 생활하며 만났던 사람들과의 인연 하나하나도 모두 나의 자산이 되었습니다.

“Time flies.”
작별하며 Watanabe 교수님께서 제게 해주신 말씀입니다. 어느덧 5개월이라는 약속의 시간이 지나 지금 제가 이곳에서 연구를 진행하겠지만, 후지산 정상을 밟았던 그 때의 다짐을 잊지 않으려 합니다.

운 좋게, 좋은 교수님들 좋은 친구들을 만나서 연구뿐만 아니라 맥주도, 가라오케도 덩달아 즐기며 잘 생활하다가 왔습니다. Rheology 분야에서 저명하신 Watanabe 교수님으로부터 배움의 기회를 주신 교수님들과, 외로움을 잊게끔 가끔 안부 메일을 보내 준 실험실 식구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며 두서 없는 장문의 글을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