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 예테보리에서 열린 제6회 유럽 유변학회에 참석하고 왔습니다.
유럽 유변학회도, 유럽 방문도 처음이어서 기대가 됐는데 연구 면에서나 개인적으로나 잘 다녀왔다는 느낌이 남습니다.

다들 하는 얘기가 미국 학회는 좀 더 시류를 따르고 유럽 학회는 좀 더 fundamental하고 이론적이라고 하죠. 전 그 말을 예전에 실험 중심/이론 중심으로 이해했는데 꼭 그런 건 아니고요. 멜트 등 전통적인 주제의 세션이 여전히 크고 유행 분야의 유입이 빠르지 않은 그런 분위기입니다. 2005년부터 참석한 미국 유변학회에선 중심 세션이 해마다 변하는데, 여긴 안 그런 듯하네요. 제가 발표한 세션도 microrheology에 fluidics 랑 합쳐서 마지막 날에 반나절 밖에 없었고, 대신 polymer melt & solution, complex fluids, rheology of solids, dispersion rheology 등의 세션이 컸습니다. 제게 직접 관련된 세션이 작아서 눈에 불을 켜고 노려본다는 자세보다는 눈 크게 뜨고 공부하는 마음으로 다녔어요.
그 외에 눈에 띈 것은 food & biorheology 세션이 생각보다 컸다는 점과, shear-banding에 관한 여러 발표입니다. 전 예전에 wormlike micellar solution 공부하면서 같이 배웠는데 아직 뚜렷하게 실체가 잡히지 않거든요. 실험적 관찰에 대한 연구가 그동안 나오면서 논란이 계속되는 듯한데 일부 교수는 이에 대해 회의적이라고도 하고 (물리적인 의미가 있는 것이냐, 학문적 유행뿐인 것 아니냐), 안 교수님은 미세 구조가 있는 모든 물질에 shear-banding이 있을 것이라고 발표를 하셨는데 앞으로 어떤 과정으로 어떤 결론이 내려질지 궁금한 부분입니다.
제 발표는 마지막 날 마지막 세션이었는데, 노트북의 부팅이 채 완료되지 않은 상태에서 발표를 시작했다가 중간에 노트북이 멈춰버리는 불상사가 있었지만 그 덕에 오히려 긴장도 해소하고 무사히 마쳤습니다. 첫 번째 코멘트는 고분자 용액의 경우 물에서처럼 전기장이 균일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해보라는 것이었고, 질문은 PEO 용액에 나타난 disturbance가 3차원이냐, 그걸 정량할 수 있느냐는 내용이었어요. 둘 다 적절한 질문이었지요.
또 제게 좋았던 점은 대화였어요. 우리 학교, 우리 연구실에서만 머무르다가 다른 곳에서 연구하는 분들의 생각과 고민을 듣고 나니 눈이 달라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번에 한국에서 학생 네 명, 교수님 일곱 분이 참석했는데 연세 드신 교수님부터 젊은 교수님까지 많은 이야기를 들을 좋은 기회였고요. 버몬트 그룹에서 박사 과정 중인 승재 오빠 연구하는 얘기나 예전에 미국에서 함께 연구했던 포닥들이 포닥 과정을 마치고 researcher로, 혹은 engineer로 활동하는 얘기를 들은 것도 제겐 매우 좋았습니다. 앞으로 뭐든지 할 수 있을 거라고 말하지만 그 뭐든지에 뭐가 있는지 더 잘 알고 싶었거든요. 내가 할 일, 할 수 있는 일과 해야 하는 일에 대한 복잡한 마음이 대화를 통해 한결 정리되는 느낌이었습니다.

첫 유럽 방문에 스웨덴을 가게 됐는데, 북유럽이 특히 그렇다더니 어디를 가도 영어가 자연스레 통하더군요. 네덜란드 아인트호벤 대학에서 유학하시는 분도 영어만으로 생활이 가능하다네요. 그런 작은 나라들은 내수로는 먹고 살 수가 없어서 영어를 할 수 밖에 없다는... 가게나 식당에서 마주친 사람들은 대체로 친절한 편이었고, 북쪽이라 날씨는 서울보다 좀 쌀쌀했습니다. 흐리고 바람이 불다가 금요일엔 해가 쨍하게 났는데 순식간에 선글라스를 쓴 사람들이 밖으로 몰려나와서 웃겼어요.
물가가 비싸다더니 과연 음식과 교통비가 상상 이상이었고 유럽답게 미술관 입장료는 아주 저렴했고요. 음식이... 너무 맛있어서 열심히 먹고 잔뜩 통통해져 왔습니다. 스칸디나비아 음식으로 유명한 것이 herring pickle (청어 절임) 인데요. 생선 살을 발라서 양파즙이나 겨자 소스에 절인 젓갈 같은 건데 아, 또 생각하니 침이 고이네요. 그리고 물보다 싸다는 커피와 와인이 역시 맛있었습니다. 학회장에서 주는 공짜 커피가 닝닝하지 않았어요.
오고 갈 때 핀란드의 FinnAir 를 탔는데요. 이곳이 요즘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이라는 점을 밀더군요. 미국으로 갈 때 북쪽으로 알래스카를 지나가는 것처럼 유럽으로 갈 때도 북쪽으로 가서 제일 가까운 것이 아닌가 싶은데, 헬싱키에서 다른 유럽 도시로 가는 연결 시간표도 좋고, 환승 시설도 편리하고, 에어버스 330을 새로 도입해서 비행도 편했어요. 가격도 저렴한 편이니 조만간 유럽에 가실 분들은 참고하시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