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보다도, 연구비 압박에도 불구하고 결과가 어떻게 될 지도 모를 일에 지원해주신 교수님께 먼저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지난해 독일 가속기 연구소에 있는 현규형이 세미나를 하면서 SAXS를 소개했었고, 빔을 수직으로 세울수 있어 rheo-saxs가 가능하다는 말을 듣고는 건조도 해볼 수 있겠다라는 막연한 생각에 이 일을 한번 꾸며보았습니다. 지금까지 건조중 구조 변화를 이런 방법으로 본 적은 없을거란 생각이 들어서 잘만 하면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단 생각을 했었죠. 처음엔 실험을 할 수 있게 될 거라는 생각은 안하고, 밑져야 본전이라는 라는 생각에 한번 지원을 해보았는데요, 막상 되고 나니 잠시 좋았었지만, 결과에 대한 큰 부담이 생기더라구요. 7월로 실험 일정이 정해지고 나서부터는 특별히 뭘 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준비는 해야하고 등등... 압박감이 대단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연수가 silica suspension의 구조를 saxs로 해석한 논문을 가져왔는데요, 순간 ‘이거다!’ 싶더라구요. 그때부터 연수가 열심히 saxs를 찍고, 그걸 해석하면서 건조중 구조 변화에 대한 실험 계획을 세웠습니다.

   독일 출장을 갔어요. 첫날 실험실을 둘러보고, 장비도 보고, 설명도 듣고, 샘플도 만들고 등등, 준비가 나름 순조롭게 진행되었죠. 현규형이 가끔 ‘이거 너무 순조로운데~’ 할 때마다 뭔지 모를 불안감도 있었지만, 그 상황에서는 실험 상황을 simulation 하면서 필요할지 모를 샘플과 도구를 준비하느라 바빴죠.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토요일 9시부터 다음주 목요일 오전 9시까지, 총 108시간(중간에 12시간 정비)이었습니다.
   토요일 아침 9시 모두 준비를 하고 갔는데 그때 갑자기 전기적인 문제가 생겼다면서, 월요일 아침에 보자더군요. 이런... 빔 사이언티스트 한마디에 2일이 그냥 날라갔습니다. 그때에는 ‘뭐, 이럴수도 있겠다..’라고 생각했죠. 그래서 주말은 대기하면서 줄어든 빔 타임에 맞추어 실험 계획을 다시 짰습니다.

   월요일 아침 9시, 이때부터 문제가 좀 더 심각해졌어요. 빔사이언티스트 표정이 엄청 안 좋으면서, 오늘도 장비를 아직 못쓰겠다고 하더라구요. 전기적인 문제는 해결했는데, 빔이 표적을 벗어나 있어서 찾아야 한다고, 언제 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구요... 이때부터 정말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어차피 계획한 실험을 모두 하는 것은 토요일에 물건너 갔고, 내년이나 다음을 생각하면 준비한 샘플이 측정이 되는지라도 해봐야 하는데, 그 시간이 있을까... 만약 12시간이 있다면 어떤 샘플을 먼저 해야 하나 등등... 이때부터 분위기를 띄우던 성한이도 말이 없어졌어요...

   화요일 아침 9시, 다시 가보니 빔 사이언티스트 표정이 좋아졌고, 빔을 찾았다네요. 그렇지만 calibration을 해야 한다면서 오후부터 하자더군요. 여튼 오후부터는 실험을 해야 해서 준비를 했습니다. 그렇게 이래저래 해서 오후 5시부터 실험을 시작했는데, 그땐 토요일에 만들어 두었던 샘플이 변해서 또다시 만들어야 했죠. 한시가 급한데 샘플을 다시 만들자니 짜증도 나고, 저울 쓸 때도 자꾸 실수하고, 손도 좀 떨리더군요... 이래저래 우여곡절 끝에 화요일 저녁 7시부터 다음날 수요일 오전 9시까지 14시간 실험을 하였습니다. silica/PVA suspension의 rheo-saxs 실험을 했고, 다행스럽게도 잘 되는 분위기어서 한 세트 했구요. 정말 다행이었어요... 일단 실험을 했으니깐요...뭐라도 건진 느낌... 새벽에는 건조 실험을 몇개 했는데, 뭔가 조건이 잘 안맞은 느낌이더라구요. 일단은 빔라인 정비 시간이 되어서 저희는 기숙사로 들어왔습니다.

   수요일 오후 6시, 이제 남은 시간은 다음날 8시까지 14시간입니다. 이때 실험을 뭘 할지 현규형과 얘기를 했는데요, 그 전날 rheo-saxs 실험은 했으니 건조 실험에 집중하기로 했습니다. 전날 실험 갯수를 늘리기 위해 건조시간을 짧게 하려고 샘플양을 줄이니 scattering intensity가 너무 낮은 것 같다고, 건조 시간이 길더라도 intensity가 확보될만한 양을 건조시키자고 하더라구요. 저도 동의했구요. 여기에서 현규형의 내공을 느꼈죠. 현규형 말 듣고 하니 beam intensity가 확 커지고, 건조가 되면서 pattern이 바뀌는 것이 보이더라구요!! 일단 그게 왜 그렇게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신호가 바뀌니 엄청 기뻤습니다. 결국 실제 결과를 분석할 가치가 있는 건조 실험 결과는 이렇게 마지막 14시간에 나왔습니다. 이 시간에 빔이라도 고장나거나 카메라와 연결된 컴퓨터라도 꽝나버렸으면 정말 생각하기도 싫네요... 그전에 카메라 컴퓨터가 몇번 멈추었거든요... 새벽엔 도와줄 사람도 없어서 정말이지 간절하게 기도하면서 실험했어요. 다행스럽게도 마지막 14시간은 빔도 잘 나오고, 컴퓨터도 근근히 느려지긴 했지만 멈추지는 않았고... 정말 피말리는 마지막 14시간이었습니다.  
  
   목요일 아침 8시, 긴 출장 속의 짧은 실험은 끝났습니다.... 동굴을 탈출한 느낌에 어찌나 상쾌하던지요.ㅎㅎ 일단 잠을 좀 자고 저녁에 맥주를 먹는데 우주가 없는게 참 아쉽더군요... 이렇게 독일 출장은 끝이 났습니다.  

   108시간중 30시간이라도 건진 것이 정말 다행이었어요. 처음 해보는 실험이고, 기회는 한번뿐이고, 시스템과 상황도 모르는 곳에서 실험을 하는 건 정말 귀중한 경험이었습니다. 뭐랄까... 심리적으로, 체력적으로 바닥난 상황에도 불구하고 각자 역할을 신속하고 정확하게 해주고, 유기적으로 협력이 잘 되어서 그다지 후회가 되지 않는 실험이 된 것 같아요. 현규형의 그곳 경험과 실험 중간중간에도 괜히 ‘교수’가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 정도의 정확한 상황 판단과 순발력, 집요함이 우리 실험을 이끌었고, 성한이는 체계적으로 실험 프로토콜을 정리(엑셀로 실험 파일 이름 매기고 정리 하고 등등... 그 속도와 정확성 정말 끝내줬습니다.)하고, 결과 해석 프로그램의 매뉴얼을 순식간에 독파해서 정신없이 실험하는 저와 현규형이 실험 중간중간에 실험이 잘되었는지 판단할 수 있게 해 준 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우주도 자기 할일 있는데 함부르크까지 와서 같이 대기하면서 마음 고생해줘서 고마왔습니다. 우주가 돌아가자마자 장비가 정상화 되었는데요, 이럴 줄 알았으면 좀 더 일찍 돌아갔으면 좋지 않았을까...ㅋ 마지막으로, 제안서 작성을 도와준 성준희 교수님, 뭘할지 고민하는 저에게 silica suspension의 saxs 논문을 보여주고, 독일 가기 전날까지 열심히 도와준 연수에게도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