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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출장은 출장후기를 쓸 때쯤 소감이 정리된 특별한 출장이었던 것 같습니다. 석사1년차 때 한중일학회 참석을 위해 상하이에 갔을 때나, 독일에서 살았던 1년동안은 새로운 것, 생각하고 깨닫는 것이 너무 많아서 정리하기가 버거울 정도였고, 매일 일기를 쓰거나, 후기에 쓸 말들을 정리하면서 지냈었습니다. 그에반해, 이번 ACW 일본방문은 그동안의 출장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었습니다. 1) 일본, 그리고 2) ACW라는 특성 때문인 것 같습니다. 마구마구 샘솟는 감동이나 새로움과 달리, 익숙하지만 그속에서 다른것을 찾는, 그것이 이번 출장동안 제가 얻은 점이었고, 출장후기를 정리하면서 제 생각, 느낀점, 배운점도 차근차근 정리되었습니다.

 

1)     일본

일본의 처음느낌은 후쿠오카 공항에 도착하여 각자 헤어져 혼자 호텔을 찾아가는 길에, 기차에 앉아서 창밖의 풍경을 보며 처음으로 온전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일본의 첫 느낌은 낯선나라에서 혼자 떨어져있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반-이국적” 이었습니다. 중국이나 유럽에서는 전혀 느껴보지 못한 오히려 새로운 느낌이었습니다. 긴장보다는 편안함이 앞서는 외국이라니. 이 지구상에, 바로 옆에 우리나라와 너무 비슷한 느낌의 나라가 있었구나, 그런면에서 여느 다른 외국과는 다른 곳이구나, 그래서 한국사람들이 그렇게나 일본을 특별하게 말했던 것이구나, 싶었습니다. 그리고 반이국적이어서 모순적으로 이국적인 느낌에 푹 빠지기 시작했습니다.

낯선 나라에서 첫인상을 받는다는 것은, 전혀 모르던 사실을 느끼고 체험하는 게 아닌, 너무 일반적으로 알려진 사실을 피부로 경험하게 되는 단순한 과정인 것 같습니다. 중국은 어떻더라,,유럽은 어떻더라, 일본은 이런나라이다. 누구나 아는 사실이 그 나라의 가장 큰 특징이고, 제일먼저 받는 인상일테니 말입니다. 그래서 여러 나라를 가보면서 내가 처음에 느낀 느낌이 너무 뻔한건 아닐까 하는 것을 항상 걱정했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이번 출장에서는, 초행길이기 때문에 새삼느낄 수 있는 이 단순한 느낌을 즐겨보자, 라고 생각했습니다. 누구나 아는 뻔한 사실은 제쳐두고 얼른 다른 특별한 것을 찾아보자는 압박을 버리고, 초행길이기 때문에 그 순간에만 느낄 수 있는 다시 없을 그 느낌을 충분히 즐기고 기억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리고 한창을 앉아있자 드디어, 우리나라와는 다른 일본 자체의 모습이 눈에 띄기 시작했습니다. 얼핏보면 우리나라와 비슷해보이지만, 일본만의 아담하고 소박한 분위기를 잘담고 있는 전통 가옥이나 신사의 구조가 우선 눈에 띄었고, 대부분의 차가 마티즈 같은 작은 경차라는 점, 에너지절약을 위해 엄청나게 무겁게 만들어 놓은 문들, 뭐든 지나치게 크지 않고 딱 필요한만큼만 차지하는 공간들 (특히 화장실) 이 실용적이면서도 지나치지 않은 일본인들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어느술집을 가도 단체석이 없다는점, 식당이 “바” 형식으로 되어있는곳이 많고 테이블이 있더라도 개인적인 공간을 위한 칸막이가 쳐있다는점 (심지어 3명이서 갈만한라멘집을 찾기도 어려웠습니다)은 서울대입구의 그 유명한 이상한 “규동집” 을 떠올리게 하였습니다. 한국에서는 그렇게나 특이하고 이상한 규동집이 일본의 평범한 모습이구나. 주로 혼자, 아니면 둘이서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고 집으로 돌아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일본이 우리나라보다 발전된 모습은 대부분 첫날 안교수님과의 저녁식사를 통해서 배울수 있었습니다. 우선 대부분의 음식이 맛있다는점, 그냥 동네 선술집을 가더라도 상당히 만족할만한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점, 동네마트의 신선도 수준이 우리나라 강남의 어느 대형마트의 수준과 견줄만하다는 점이 결국 경제수준을 간접적으로 보여준다는 교수님의 말씀이 일본에서 지내는 며칠동안 와 닿았습니다. (제가 만나본 수많은 음식 퍼레이드 기대하세요!).

그런데 오히려 발전된 모습보다는 놀랄만큼 뒤쳐진 시스템이 눈에 띄었던 것 같습니다. 유럽에서는 그냥 유럽이니까…했던일들이, 일본에서 더 심하다는 사실이 좀 놀라웠습니다. 출장기간 내내 와이파이를 쓸수 있던 곳은 공항밖에 없었고, 심지어 호텔, 학회장 조차 아무런 와이파이가 잡히지 않았습니다. 인터넷관련 시설이야 워낙 우리나라가 특별하게 발달이 되어있으니 우리나라의 기준에서 외국을 비교하여 낙후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또 다시 놀라웠던 점은 음식점, 술집들은 물론이고, 심지어 대형마트, 백화점에서 조차 신용카드를 대부분 사용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유럽이야 워낙 그런 시스템을 기대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카페 음식점을 제외하면 동네마트이상에서는 물론 카드사용이 가능합니다. 일본은 이보다 훨씬 체계적으로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유럽보다도 낙후된 뭔가 반전인 이 모습이 출장내내 신기했습니다. 일본은 20년전의 모습과 너무 다르다, 오래된 경제침체로 사람들도 많이 지쳤고, 여전히 포텐셜은 있음에도 불구하고 드라이빙포스를 찾기가 어려운 것 같다는 안교수님의 말씀이 계속 머리속에 맴돌았습니다.

정리해보자면, (4일동안의 작은 도시의 일본의 모습으로 전체를 봤다고 하기엔 무리가 있지만) 예전부터 약 20년전까지, 발전되어온 인프라는 충분히 훌륭합니다 (교통시설, 치안체계 등). 그렇지만 최근 20년간 갖춰져야 했을 와이파이나, 신용카드체계 같은 인프라는 심하게 뒤쳐져 있는게 아닌가 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것이 경제침체 이전과 이후의 일본의 모습이 드러나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고요. 다음에 일본을 다시 방문하면 이 느낌이 또 어떻게 달라질지 매우 궁금하고 기대가 됩니다.

 

2)     ACW

ACW는 제가 참여했던 학회들의 분위기중에서 따져보자면, 한중일과 유럽코팅학회의 중간정도의 분위기인 것 같습니다. 한중일보다는 좀더 formal하고 진지합니다. 유럽코팅학회보다는 좀더 친목위주의 모임인것 같고요. 다른 큰 학회들처럼 이 세션 저세션 돌아다니며 바쁘게 들을일 없이, 한자리에 앉아서 익숙한 주제들을 들으며, 다른사람들의 연구모습도 지켜보며, 제 연구에 대해서도 돌이켜볼수 있는 유용한 시간이었습니다. 같은 한중일 학생들이 모였는데, 한중일워크샵과는 달리 버벅대는 학생들이 한명도 없이 모두 진지하게 발표하는 모습도 인상적이었고요. 안교수님말씀대로 그 두 학회의 차이가 대체 뭐길래, 한중일워크샵에서는 버벅대는 일본학생들이 많은반면, ACW는 모두 세련되고 훌륭하게 발표를 하는것인가. 생각하게되었습니다. 그중 한 이유를 회사의 참여로 꼽을수도 있겠는데요. 산업체에서 오신 몇몇 분들이 학회의 분위기를 더욱 진지하고 formal하게 만들어 주시는 것 같습니다. 학생들, 교수님들의 발표를 하나하나 사진찍고 메모하며 경청하는 진지한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제가 발표를 시작하기 직전에 안교수님께서 산업체 사람들의 열심히 듣는모습에 대해 말씀해주셔서 더욱더 긴장이 되었습니다. 내년에는 산업체의 참여를 더 늘이자는 의견이 나왔다고 하니 내년ACW의 분위기가 또 어떻게 변할지 기대가 됩니다.

 

-       이나사와 그룹의 발표


이틀간의 발표들 중 개인적으로 제일 인상깊었던 것은 이나사와 그룹의 발표였습니다. 이나사와 그룹에서는, 이나사와 교수님과 박사과정학생1명, 석사과정학생1명이 발표를 하였는데 세 발표 모두 인상깊었습니다. 연구주제들이야 다 코팅과 건조에 관련된 얘기지만, 이 그룹의 발표가 저한테 인상깊었던 이유는, 연구를 진행해온 방식때문입니다. 연구의 시작전부터 결과를 예상해보고 고민한 흔적이 너무 잘보이는 발표였던 것 같습니다. 발표를 잘한다, 논리적이고 누구나 잘 따라갈수 있다고 느끼는 이유는 결국 연구가 논리적이고 누구나 납득할수 있는 방향으로 진행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몇 년간 의 경험으로 제가 느낀 것은 이렇게 누구나 납득할만한 논리와 결과를 내기까지 엄청난 시행착오와 노력, 고민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결과에 대한 충분한 그림이 그려져있지 않고 무턱대고 진행한 연구로는 이런 결과를 얻는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몸소 느꼈기 때문에 이나사와 그룹의 연구가 너무 멋져보였습니다. 저도 이나사와 그룹에 지지않고 더 훌륭한 연구를 하려면, 더욱더 절실하게 고민해야겠다는 생각이 저를 마구 채찍질하였습니다.

 

-       내 발표


작년에 독일에 다녀오면서 시작한 Bimodal suspension 이라는 주제로 발표를 한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회사과제와 관련되지 않고 제 스스로 모델시스템을 잡고, 순전히 제 논리로만 연구를 진행하여 발표를 한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에 뭔가 더 흥분되고 설렜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내 발표에 관심은 있어할까, 궁금한것은 많을까, 무슨 질문이 나올까 걱정도 되고 기대도 되었습니다. 발표전에 안교수님과 잠깐의 대화를 나누었는데, 무슨질문이 나올지 전혀 예상이 안된다고 말씀드렸더니, 너의 발표에 달려 있을것이라고 웃으며 말씀해주셨습니다. 발표가 끝나자 마자 총 4분이 손을 드셔서 상당히 긴장이 되었지만 그래도 내연구가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있구나 라는 사실에 상당히 기뻤습니다. 다음 SOR발표에서는 내연구에 사람들이 더 흥미를 갖도록 멋진결과로 발표를 해야지하고 다짐하게 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제가 받은 4개의 질문은 대부분 일반적이고 어렵지 않은 질문들이었습니다. 현상에 대해 흥미를 가지고 추가 질문을 하는 정도 였습니다.

1.            Gel 구조의 실제 image가 있느냐 (Vinjamur 교수님)

2.            배터리재료에 관한 연구에서 mixing step 의 차이가 무엇이냐 (Tajo Liu 교수님)

3.            이 시스템은 왜 shear thickening 이 안나는가 (Yamaguchi 교수님)

4.            Gel이 형성되는 시점, 샘플을 제조하는 process의 영향을 받진 않는가 (Inasawa 교수님)

이중 제가 제일 당황하고 뭔가 배웠다고 생각하는 것은 3번 질문입니다. 야마구치 교수님께서 하신 질문인데 “너의 시스템이 low shear 에서 젤이 형성되는건 알겠다. 그런데 왜 high shear 에서는 thickening이 안나는가?” 가 질문이었는데.. 적지않게 당황했던 것 같습니다. 제 주제에서 벗어나는 질문이라는 것은 느꼈는데 어떻게든 제 시스템과 thickening을 연관시켜서 대답을 해야된다고 압박을 받다가 대답을 버벅거렸던 것 같습니다. 저는 그순간부터 과연 내시스템에서 thickening이 날것인가 안날것인가를 포텐셜관점에서 따져보기 시작햇고, 당연히 결국은 모른다는 결론이 당연히 머릿속에서 지어졌습니다. 제가 대답을 못하니, 안교수님께서 옆에 계시다가 답변을 해주셨는데 이 질문에 대한 정답은 “지금 나의 연구초점은 Gel구조이다. Thickening은 물론 흥미로운 현상인데 우선 구조에 너무 흥미로운 현상이 많으니 이것을 보고난뒤에 그쪽도 보겠다” 라는 답변이었습니다. 뭔가 이 질의응답을 통해서 질문에 유창하게 답변하는 방식을 배웠다고 할까요. 당연히 제가 모르는 사실을 만들어서 대답하기 보다는, 나의 초점은 그게 아니다 라고 설명을 했어야 했던 것인데, 너무 당연한 질문답변 방식을 당황한 나머지 이상한 방식으로 생각해버린 저에대해 돌이켜보게 된 뜻깊은 시간이었습니다. (여담으로, 나중에 이나사와 교수님께서 말씀해주셨는데 야마구치 교수님이 thickening에 관한 연구를 하고 계셔서 그쪽에 관심이 많다고 하시더군요..그제서야 그 질문을 왜 하시게 되었는지를 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3)     교류


-       안교수님과의 저녁식사


이번 출장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첫날 안교수님과의 저녁식사였습니다. 학회전날 도착한 저희는 교수님과 5시에 만났고, 이때부터 일본 골목골목을 돌아다니며 구경 및 맛있는 음식 탐방을 시작하였습니다. 교수님께서 일본에서 생활하시기도 하셨고 일본에 아주 익숙하시기 때문에, 일본에 관한 재미있는 얘기들을 걸어다니며, 저녁을 먹으며 많이 들려주셨습니다. 일본의 예전과 지금의 차이점, 음식문화에 관한얘기 (직접 시식기회까지)들을 일본을 방문한 첫 날인데도 일본에 대해 감을 확실히 잡을 정도로 재밌고 자세하게 해주셨습니다. 저녁 먹으면서 해주신 여학생들의 진로에 관한 얘기도, 제 진로와 연관시켜 많이 생각해 보게 해주신 말씀이었고요. 지도교수님과 외국출장에서 이런시간을 갖는다는 것이 정말 흔치 않고 소중한 기회인 것을 무엇보다 잘 알기에 뜻깊은 시간이었습니다.

 

-       이나사와그룹과의 저녁식사

 

학회첫날 이나사와 그룹의 두학생과 뱅킷에서 특히 친해지게 되었는데요. 덕분에 이나사와 교수님께서 같이 2차를 가자고 제안해주셔서, 저희 멤버 셋과 이나사와교수님, 학생둘 이렇게 여섯이서 일본의 전통 술집으로 뱅킷 후 뒤풀이를 가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교수님과 학생들이 너무 친절하게 일본의 맥주, 사케를 골고루 맛보게 해주셨고, 일본사람들은 이런 곳에서 퇴근 후 술자리를 가진다, 아주 오래된 술집이다, 등등 일본에 관한 진짜 얘기들을 많이 들려주셨습니다. 큐슈지방에서는 사케보다는 소주가 유명하다며 덤으로 소주도 시켜주셨는데, 미림이와 제가 한국소주와 비교하여 생각한 나머지, 큐슈소주를 맛보고 이거 물 아니냐 라고 해서 일본인들을 당황하게 하고 한바탕 웃었습니다. 또한 이나사와 교수님께서 제 연구에 관심을 가져주신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는데, 이것은 제 발표 후에 하신 질문으로도 느낄 수 있었고, 이 술자리에서 왜 작년ACW에는 너의 발표를 들을 수 없었냐고 물어보시는데도, 관심을 가져주시는 것에 대해 감사했습니다. 학회발표를 통해, 이제 더 이상 제 연구가 저만의 연구가 아니라는 것을 몸소 느끼게 되었다고 할까요. 책임감이 느껴지고 잘해야겠다고 다시한번 다짐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나사와 교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일본교육의 현실, 본인의 교육에 대한 가치관을 들으면서 배울점이 정말 많은 분이구나, 이런분과 함께 할수 있게되어서 너무 운이 좋다고 연신 생각하였습니다.

 

사실 후기를 쓰기전에, 제가 느낀게 무엇인가 조차 정리가 되지 않았었는데 쓰다보니 엄청 많은것을 배우고 느끼고 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런 기회가 있을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마지막에 쓰는 이렇게 좋은 기회를 주신 두분 교수님께 감사드린다는 말이 인사치례가 아닌 몸소체험하고 느낀바 그대로, 마음속에서 저절로 나온게된다는것도 다시한번 알게 되었고요. 이런좋은 기회를 누리게 된데에 대해서 감사함뿐아니라 책임감도 크게 느껴 어깨도 무겁습니다. 어떤식으로든 사회에 보답하기 위해서 발전하고 잘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