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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떠올리기만 해도 설레는 첫 SOR학회 경험에 대한 느낌을 풀어보려고 합니다. SOR이라는 이름자체만으로도 가기 전에 긴장도 많이 하고 기대도 많이 했었는데, 생각했던 것 그 이상으로 너무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우고 돌아왔습니다. 제 얼마 안된 연구 인생의..(^-^;) 전환점이 될 것 같은 예감이 들기도 하고요..
해외출장을 다녀오면 항상 배운 점을 그 나라 와 학회 이렇게 두 가지로 구분을 했었는데, 이번 해외출장은 오로지 “학회” 그 차제만이 남은 출장이었던 것 같습니다. 다녀온 도시가 워낙 쓸쓸하고 조용한 곳이라서.. 그렇기도 하고 학회가 워낙 강렬하기 때문에 그렇기도 합니다. 두 번째 이유가 지배적인 것 같습니다.
1. 대가들의 발표
앞서 같이 학회에 참석한 동료들의 후기에도 다들 적혀 있듯이 학회장의 규모부터 압도적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그 안에서 이루어진 발표와 토론은 학회장의 규모보다 더 압도적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세 명당 한 명 정도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대가”들의 발표였던 것 같습니다. 엄청 오랜기간동안 꾸준히 연구해온 결과를 40-50장씩 들고 와서 25분 동안 발표를 하고 토론을 하는 과정을 보면서, 과연 내가 저들과 같은 시간을 분배 받아서 할만한 발표를 준비해왔는가…답은 당연히 생각할 것도 없이 No, 였습니다. 대가교수님들의 발표 외에도 학생들의 발표 또한 그에 못지 않게 훌륭했습니다. 그전에 아무리 교수님과 선배님들께 SOR의 발표가 훌륭하다는 말을 들어도 감이 오지 않았었는데, 직접 보고나서야 너무도 절실히 그 말의 의미를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얼마만큼의 피땀이 들어갔는지 짐작도 할 수 없을 만큼 훌륭한 데이터들.. 이것들을 이론적으로 잘 분석한 결과들, 논리적으로 잘 정리된 슬라이드, 그리고 자신감 있게 설명하는 발표자까지 모든 게 완벽해 보이는 발표를 너무 많이 접할 수 있었습니다. 사실 대학원세미나라던지 다른 세미나, 학회 등등에서 종종 재미없이 듣는 제 자신을 발견할 때 내가 다른 사람 연구에 관심이 없나? 생각을 한적이 있었는데, 이 학회에 참석하는 동안에는 시차 때문에 낮 시간 동안 너무 졸렸음에도 불구하고, 졸지 못할 만큼 아니 졸기 싫을 만큼 너무 재미있는 발표들을 많이 듣게 된 흥미로운 경험이었습니다. 아 이제 피곤하다..싶었던 하루의 마지막 세션에서조차도 발표가 시작되면 다시 또 나도 모르게 집중을 하게 되는 특이한 경험이었습니다. 왠지 그럭저럭 매일 밥을 먹는 일상이었다가 (국내의 학회발표들..) 품질 좋은 1등급소고기를 포식하고 너무 배불러서 못 먹겠는데 또 고기가 나오면 너무 맛있어서 또 먹게 되는 느낌 같다고 학회중간에 혼자 생각을 했습니다^ㅡ^;
2. 연구의 깊이
훌륭한 발표의 본질은 결국 훌륭한 연구라는 것을 다시 한번 절실히 실감하게 되었는데요, 제가 그렇게나 꿈꾸던 연구들을 해온 사람들을 눈앞에서 보니까 두근두근 하면서도 부럽기도 하고, 한편 나도 할 수 있어 라는 생각도 들고요.. 일단 이 사람들은 인프라가 잘 갖추어진 연구 환경에서 시작을 하였으니 속도가 빠르고 깊이 있는 연구를 할 수 있는 접근성의 정도(?) 가 훨씬 용이하긴 한 것 같습니다. Visualization을 할 수 있는 tool이라던지 model system을 디자인할 수 있는 환경이라던지, modeling관련 이론을 체계적으로 정립해온 노하우 등 잘 갖춰진 인프라를 기반으로 연구를 시작하기에 한국에서는 할 수 없는, 불가능한 연구들을 쑥쑥 잘 해내는 것 같아서 부러웠습니다. 따라잡을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면 이런 환경에서 비롯되는 것 같습니다. 이런 환경은 하루아침에 갖춰지는 것이 아니고 몇 년간, 혹은 수 십년간 꾸준히 쌓이게 되는 노하우니까요. 안교수님 말씀대로 안교수님의 후 세대들 즉 우리가 교수가 되어 자리를 잡을 때쯤엔 그들 못지 않게 이런 깊은 연구를 하는 것이 가능하겠지요^-^. 그리고 나서 지금 당장의 제 박사과정 동안의 연구에 대해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이렇게 잘 갖춰진 환경에서 깊이 있는 연구를 하는 자들 사이에서 내가 파고들 길이란…
3. 나의 발표
사실 이것은 저의 발표의 정체성 하고도 관련이 깊었습니다. 이렇게 깊은 연구를 수행한 자들 사이에서 나의 발표는 무슨 의미를 갖는가… 이 사람들 앞에서 내 연구를 주눅들지 않고 자신감 있게 소개하려면 우선 이 정체성 확보가 급했습니다. 우선 첫날 너무도 수준 높은 연구와 발표가 재밌으면서도 한편, 주눅이 들었던 것 같고, 내년엔 뒤쳐지지 않을만한 결과를 가지고 와야겠다는 다짐을 했고, 그 다음은 당장 마지막 날 있을 저의 발표의 의미를 찾는 것이 숙제였습니다. 사실은 이 의미는 이미 안교수님께서 발표를 준비할 때부터 말씀해주신 내용이었습니다. 안교수님께서는 처음부터 답을 알고 계셨다는 것을 학회를 통해 제가 직접 깨닫고 나서야, 진실로 느끼게 된 것 같습니다. 이 사람들이 잘 갖춰온 이러한 연구시장에서 우리는 틈새분야를 공략하는 길, 우리는 이렇게 흥미로운 연구를 하며, 적어도 산업에 기여하는 일은 우리가 더 잘한다, 아직 다듬어지진 않았지만 상당히 가능성이 있는 재미있는 연구를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을 말로만 들을 땐 와 닿지 않았었는데, 학회장에서 수준 높은 발표들을 보면서 제 스스로 다시 처음부터 이 답을 절실하게 찾아나갔던 것 같습니다. 결국 마지막 날에는 이 깨달음을 얻고 자신감을 얻어! 적어도 이 분야에서만큼은 나는 이렇게 재미있고 자랑할만한 연구를 한다…는 것을 제 스스로에게 확인시키고 주눅들지 않고 발표를 잘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학회의 첫날부터 마지막 날까지 주눅듬-다짐-정체성확인-자신감회복-발표! 의 순서를 밟은 아주 재미있는 경험을 하였습니다. 이렇게 다이나믹하게 생각의 변화가 있었던 학회는 처음이었는데, 이 역시 아주 높은 수준의 학회에서 발표해라! 하고 내던져지는 경험을 해보니 이런 과정을 필사적으로 겪게 되는 것 같습니다. 박사과정 동안의 제 자신의 성장을 위해 너무 좋은 경험이었던 것 같습니다.
4. 그 외 유익했던 점들
1) 레퍼런스 정리
그 외에 유익했던 점들이 셀 수 없이 참 많습니다. 발표를 듣다 보면 사람들이 인용하는 논문들이 참 좋은 것이 많습니다. 각각 주제별로 예전연구부터 최신경향까지 쭉 정리하고 자신의 연구가 기여하는 부분을 발표하다보니 저절로 공부가 참 많이 되었습니다. 그 레퍼런스들을 받아 적어서 한국 가서 꼭 바로 읽어보겠다고 신나서 적어와서, 차차 하나씩 읽고 있는데 너무 재미있고 기대가 많이 됩니다. 사실 한국에서 제가 관심있는 분야 (gel, bimodal, scattering, confocal 등등) 에 대해서 혼자서만 인터넷으로 논문을 찾고 찾고 하는 것이 약간은 버거웠는데, 수능 때 보던 정석교과서같은 것을 발견한 기분이라고 해야 할까요.. 정리가 잘된 교과서들을 찾은 기분이라서 너무 신이 났습니다. 이번 주 희경이의 귀국발표를 들으면서 부러웠던점은, 제가 학회동안 신나게 적었던 레퍼런스들이 희경이의 발표자료에 그대로 상당히 많이 들어있던것입니다.. 아마 솔로몬교수님은 이러한 레퍼런스정리를 참 잘해놓으셔서 학생들이 그대로 잘 공부할 수 있었나 봅니다.
2) 나의 연구
유변물성을 정량화 하고 visualization을 통한 구조관찰…이 항상 제 연구의 큰 map이었는데… 이번학회를 통해서 이 두 가지에대한 아이디어 정리는 물론이고, 새로운 생각의 정리까지 얻게 된 것 같습니다. 발표들을 보면서 꼭 해보고 싶었던 것은 모델링! 인데요, 구조 관찰을 하고 그것이 왜 그런지 설명하기 위해서는 모델링이 필수라는것을 몸소 느끼게 되었습니다. 바이모달의 모델링…생각만해도 설레게 되더군요. 정량화, 구조해석에 이어 모델링을 통한 메커니즘 설명까지 하면 바이모달에 대해 완벽한 그림을 그릴수 있겠구나.. 물론 쉽지않은 일이겠지만 꼭 시도해 보고 싶은 의욕이 마구마구 솟구쳤습니다.
3) 영어, 깊은 discussion
빠질 수 없는 것이 영어인데요. 사실 독일에 다녀오고 이곳에서 박사과정을 시작하면서 진로에 대해 생각할 때 포닥보다는 회사쪽으로 많이 치우쳤었습니다. 석사때는 무조건 박사하고 포닥하는 것을 당연시 생각했었는데 어느새 제자신의 성장보다는 현실을 많이 생각하게 되어 회사생각을 많이 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학회에 참여하고 깊은 토론을 하는과정을 지켜보면서 저곳에 뛰어들어서 같이 토론하고 싶다! 는 열정이 다시금 너무 많이 생겼습니다. 아직 회사에몸을 담기에는 내자신이 너무 젊지 않은가.. 미국에서 절실하게 공부를 해볼수 있는 기회가 인생에 또 오기 힘들테니까요.. 포닥에 대해 제 자신의 가능성을 더 확보하는 길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참 운이 좋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는데… 다시금 느끼게된 일주일이었습니다. 실험실에 들어와서 수많은 산업체 경험들을 하였고, 독일에 파견되어 해외경험을 하며 다시 많은성장을 하게 되었고, 방장을 하면서 소통하는법도 나름 배우게 되었고, 박사과정동안 이렇게 재미있는 제 연구주제를 만나게 된것도 참 운이 좋구요… 이렇게 딱 필요한 적절한 시기에 SOR학회에 참여하여 발표를 하게 되고, 또 발표가 마지막 날이어서 제 스스로 생각정리를 마친후에 발표에 임할수 있게된 것 까지.. 학생때 이런기회가 주어진 것이 정말 감사하면서도, 이렇게 주어진 기회를 발로 차지 않고 최대한 흡수해서 성장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학회에 참여했고 발표를 했고 많은것을 배웠습니다. 정말 감사한 마음과 함께 박사과정동안 배워가는 많은 것이 참 재미있는것 같습니다. 내년에는 흥미로운 주제 를 바탕으로 연구의 깊이로도 미국에 뒤쳐지지 않을만큼 훌륭한 연구결과를 얻어내겠다는 의욕이 가득합니다.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