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북경에서 있었던 IWEAYR을 다녀왔습니다.

 

비행기에서 잠시 눈을 붙이고 나니 이미 북경이 가까웠습니다. 창밖으로 보이는 모습은 마치 영화속에 등장하는 암울한 미래도시처럼 각진 구조물들이 끝없이 펼쳐진, 누런 빛깔의 넓은 땅이었습니다. 산이 없어서 완전히 평평하고 넓은 도시가 한 눈에 들어왔지만 뿌연 공기 탓인지 지평선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내린 뒤, 공항을 잠시 둘러보고 식사를 하고 셔틀버스를 타는 과정에서 크게 느낀 것은 영어가 거의 통하지 않는다는 점이었습니다. 학회 장소인 Beijing friendship hotel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조금이라도 영어가 통하는 곳은 스타벅스 뿐이었습니다. 공항에 있는 모든 대부분의 식당에서 영어를 전혀 알아듣거나 말하지 못하는 듯 했습니다. 이전 손님이 먹고간 빈 그릇을 치워달라는 요청에서부터 음식 주문까지 모두 바디랭귀지로 해결해야 했습니다. 택시의 경우 전혀 말이 통하지 않는데 호텔 이름을 한자로 알려줘도 기사는 모르쇠로 일관하며 갈 생각을 하지 않았고, 현위치와 행선지가 표시된 지도를 들이대고서야 출발할 기색을 보였습니다. 정말 몰라서였는지 가고 싶지 않아서였지는 아직 모르겠습니다.

 

호텔이 위치한 동네인 중관촌은 중국의 실리콘밸리라 불리는 곳으로서, 여러 IT회사들 및 전자상가와 함께 북경대, 칭화대 등 여러 대학들이 밀집해 있는 곳입니다. 오늘날 중국이라는 나라의 여러 요소 중에서 과학, 기술, 첨단산업, 인재육성과 같은 측면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는 곳이 아닐까 하는 기대를 조금은 했었으나 이내 전혀 말도 안되는 생각이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과학의 도시 대전에서 과학을 느낀다는 소리나 마찬가지인 듯.) 시간과 마음의 여유도 없었을 뿐더러 생각보다 너무 넓은 곳이기에 호텔 밖으로 나간다는 생각은 접게 되었습니다. 저녁식사후 호텔 주변을 잠시 둘러보았으나 잘 알지 못하는 상태로 함부로 다닐 수가 없기에 호텔 바로 앞의 아웃렛 정도 외에는 거의 구경을 하지 못했습니다.

 

대본을 100% 완벽하게 외우기 전까지는 연습이 불가능할 정도로 버벅거림이 심하기 때문에 도착한 당일에는 바로 다음날 아침에 있을 발표 준비 생각에 마음이 갑갑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결국 충분히 연습을 하고 문제없이 발표를 할 수 있었습니다. 저의 발표 준비방식에 대해 고민이 많았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매우 많은 시간을 들여 대본을 외우지 않고도 수차례 연습을 하면서 어느 정도 수준의 발표가 가능합니다. 그런데 저는 몇 번 시도해 본 결과 그런 사람들과는 전혀 비교할 수 없도록 안 좋은 모습이 나타나기에 완벽한 암기만이 발표의 진행을 가능하게 해줍니다. (‘한다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중간에 10초 이상 멈추어 있는 현상은 없기 위한 최소요건) 이러한 점은 준비에 드는 시간과 집중력 뿐 아니라, 발표 전날 내용의 수정이 가능한지의 여부에서 차이가 나타납니다. 일단은 해결책이 없기 때문에 시간투자를 많이 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더 많은 연습과 경험이 문제를 해결해 주기를 기대하며, 고민은 일단 그만두기로 했습니다.

 

대본과는 별도로, 제대로 된 연구내용을 가지고 발표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 기분이 좋지 않았습니다. 발표를 준비하는 동안 의도적으로 그러한 사실을 잊고 대본암기와 연습에 최선을 다 하였으나, 실제로 학회에서 발표를 시작하면서 앞쪽 자리에 앉아 있는 교수님들의 얼굴이 보이는 순간부터 조금은 짜증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그 기분이 아직까지도 남아 있으며, 빨리 연구를 하여 그럴듯한 결과를 내고 싶다는 생각에 마음만 조급합니다. 제 발표를 마치고 질의응답 시간에는 예상했던 대로 꽤 많은 질문을 받았습니다. Geometrycouette cell로는 시도해보지 않았는지, particle size는 어느 정도인지, 다른 재료의 geometry를 사용해 보지는 않았는지, 왜 건조의 영향을 크게 받는 그 샘플을 굳이 측정 대상으로 선택한 것인지, 어떤 타입의 solvent trap을 사용하였는지와 같은 질문을 받았습니다. 질문 자체는 전혀 어렵지 않았으나 대답하기가 민망한 질문들이었습니다. Solvent trap에 대한 질문을 던졌던 중국인 Suntea break 시간에 저를 찾아와서 조언을 해 줬습니다. 자신도 건조의 영향이 심한 샘플 때문에 고생을 좀 했었다면서 ARES에 기본으로 제공되는 solvent trap외에, 따로 파는 고성능의 solvent trap을 사용하면 용매의 증발이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고 추천을 해 줬습니다.

 

저의 발표 순서가 지나기 전까지는 머릿속으로 연습을 하느라 앞의 세 발표를 제대로 듣지 못했습니다. 알고보니 아쉽게도 제 순서가 있는 세션이 비교적 수준도 높고 재미있는 연구들이 있는 편이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속상하게도 어려운 LAOS 연구들 틈에, 저의 단순한 측정실험 발표가 외로이 들어가 있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딱히 분류하기가 곤란한 주제라서 레오미터의 측정 내용이 많이 들어간 LAOS 연구들이 있는 세션에 끼워진 모양입니다. 저에게 질문을 하고 따로 코멘트도 해 줬던 Sun 박사가 바로 제 앞의 순서였는데 발표는 제대로 못 들었지만 초록을 보니 재미있어서 따로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습니다. 어느 정도 이상 농도의 라포나이트 젤에서, 일정한 shear strain으로 dynamic time sweep을 했을 때에, strain 크기에 따라 수십 초 내지는 수 분이 지나서야 G’이 급격히 감소하는 delayed yielding 현상이 신기해 보였습니다. 자신도 그 현상을 정확히 설명은 못하겠다는데, SAXS 등이 이해에 도움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추가적인 연구 결과가 궁금해졌습니다. 그 외에는 phase와 관련된 연구들을 흥미롭게 보았습니다. 고분자 블렌드, 블록코폴리머, selective solution 등이 존재하는 시스템에 대한 상전이 관련 유변학 연구들이 있었습니다. 한국에 돌아가서 시간이 허락하면 LAOSphase 관련 공부를 좀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외에는 우리 실험실에서 사용하는 PS 입자를 합성해 주는 수원대 학생, 믹싱에 대한 연구를 하는 경상대 학생과 연구 내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면서 많은 공부가 되었습니다.

 

한편 발표 태도가 실망스러운 참가자들도 일부 있었습니다. 특히 일본인들의 경우 틀림없이 놀러왔다는 티가 심하게 나는 학생들이 보였습니다. 어떤 학생은 배기팬츠를 입고 발표했습니다. 주머니에 손을 넣고 뒤돌아본 본 채로 발표하는 학생도 있었고 질문에 대답하고자 하는 의지가 없는 학생도 있었습니다. 발음이 알아들을 수 없다거나 대본을 들고와서 읽는 정도는 너무 흔했습니다. 발표준비를 제대로 안했던 학생들이 저녁의 노는 시간에도 눈에 띄게 잘 놀았습니다. 훨씬 더 다양하고 재미있는 사람들과 즐겁고 새로운 경험을 하고 신나게 놀 수 있는 기회는 학부시절에 충분히 많았을 것이며, 원한다면 다른 기회는 충분히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제가 난생 처음으로 경험하는 해외학회였습니다. 비싼 돈을 지원받고 교수님과 선배들로부터 도움을 받고 나름대로는 열심히 준비를 해서 다녀왔습니다. 어떤 느낌의 워크샵인지 모르고 간 것은 아니지만, 내가 어떠한 태도로 임해야 하는지 불분명했습니다. 주최측인 중국에서 학생들의 화합 및 유흥에 큰 비중을 두지 않아서 더 애매해진 학회 분위기 탓인지, 너무 쉽고 가볍게만 생각하는 다른 참가자들 탓인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내년에 다시 가게 된다면 저의 태도는 어떠할 것이며 학회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어떻게 다를지 궁금해집니다.

 

학회를 다녀오면서 다양한 내용의 연구를 접하는 것도 좋았지만, 일을 하지 않고 앉아서 혼자 생각할 시간이 있다는 점이 좋았습니다. 연구 관련된 계획 및 아이디어는 물론, 혼자서 정리해 볼 필요가 있던 생각들을 충분히 여유 있게 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화두 중 하나는 앞으로 연구주제를 정하여 나의 고유 분야를 만들어 나갈 때에 무엇을 생각해야 하는 지였습니다. 먼저 두 가지 -- 내가 왜 연구를 해야 하는가, 내가이 연구를 해야 하는가 --를 검토하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한 굳이 이번 기회가 아니더라도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좋은 사람들과 함께할 수 있어서 큰 도움이 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멋진 사람들이 가까이에 있다는 것은 인격적으로나 학문적으로나 배우는 것이 많은 훌륭한 환경입니다. 다른 학교 사람들도 우리가 서로의 발표 내용에 대해 설명하고 토론하는 모습을 보며 대단히 부러워했습니다.

 

여러 면에서 느끼는 것이 많은 기회였습니다. 제가 한 걸음 더 성장할 수 있는 작은 계기가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교수님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