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선연한 봄의 색채가 스물스물 산자락을 타고 올라와 302동의 칙칙한 회벽도 화사하게 바꾸는 마법을 보여주고 있네요. 4월 중순, 예전보다 점차 늦어지며 짧아지는 봄을 보면서 서글픈 것은 결코 제 생일이 12일이라서가 아니에요. 그런거에요. 제가 24살이 되어서가 그런게 아니에요! 막상 쓰고보니 나중에 제 후배들이 혹시라도 이 글을 읽으면 엄청 민망하겠구나 싶습니다. 그치만, 원래 후기는 재미있게 써야 또 가고 싶어지는 법이잖아요^^

 

포항가속기 실험을 위해 우선 했던 일은 교통편을 찾는 일이었습니다. 포항까지 KTX가 가지않는다는 무척이나 충격적인 사실 앞에서 새마을호 혹은 고속버스를 타고 그 무거운 짐들과 함께 5시간 넘는 시간을 낑낑대며 가는 걸 상상해보니 한숨만 나오더군요. 이번에는 실험실에 무엇이 있는지 몰라서 짐을 과하게 챙기긴 했지만, 다음에는 보다 가볍게 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암튼 그래서 신경주까지 KTX를 타고 다시 셔틀버스, 그리고 택시라는 세개의 교통수단을 활용하는 방안을 차선으로 택했습니다. 포항의 경우 서울에 비해 기본요금도 저렴하고 도시 자체가 작은 곳이라 끝에서 끝까지 출퇴근 시간에 왔다갔다해도 10000원이 넘지 않더군요. 물론, 어딘가 다녀올 정신적 시간적 여유는 오로지 첫날뿐이었지만요. 원래 가기로 예정된 세 명의 인원은 가서 보니 4명조차도 부족하다는 것을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뒤에 이야기하겠습니다.

 

우선 포항까지 가는 길은 험난하고, 험난하고, 험난합니다. 날씨가 상상 이상으로 더운 탓에 폴라티를 입은 제 자신을 원망했죠. 이번 여름에 여름학교를 가게 되면 그때는 무척이나 천이 적게 들어간 옷들만 가볍게 챙겨서 가야겠어요. 점심은 포항터미널에서 가볍게 먹고 안전교육부터 받으러 서둘러 갔습니다. 이때 주의할 점, 연구1동이 가속기 내부와 외부 두 군데에 존재해요ㅠㅠ 안전교육을 받을 곳은 가속기 내의 연구1동입니다. 저는 찾아볼 때 연구1동이 가속기 외부의 연구1동인 줄 알아서... 선배 죄송합니다. 이 자리를 빌어 사죄의 말을 드려요 잉잉. 무거운 짐을 이끌고 그렇게 헤매는 것에 비해 안전교육은 지나치게 빨리 끝났습니다. 심지어 컨닝도 되는 시험이에요ㅋㅋ 긴장탔는데... 실제 실험장소와 실험실 등등을 살펴보고 나니 어느덧 저녁이 다 되어 숙소에 잠시 짐을 푼 후 교수님의 배려로 맛난 회를 먹으러 갔습니다+_+ 사진이 제게 없다는 것이 유일하게 안타까운 점이에요. 완전 맛있었어요! 포항에 왔으니 밤바다도 봐야한다던 현규선배의 자상한 안내로 북부 해수욕장으로 가서 밤바다를 보았습니다. 바다는 항상 아름다운 것 같아요. 뭔가 깊고 푸르고...

 

여기까지는 참 좋았는데 다음날 아침 9시반부터는 정신없이 일이 돌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시료를 담을 셀이 제대로 준비되지 않아 그 면에서 많이 우왕좌왕 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이번에 확실히 보고 왔으니 다음번에는 보다 효율적으로 실험을 진행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독일에서와는 또 달리 실험의 전반적인 과정을 다 같이 봐주시고 계속 무언가 도와주려고 하셨던 박사님이 계셔서 다행이에요. 처음 USAXS 설비와 interlock system을 봤을 때의 생각은 딱 하나였어요. 정말로 user-friendly interface다... 하는 것. 독일에서의 무시무시한 전선이 마구 널부러져있는 뭔가 낙후된 기기가 아닌 깔끔하고 버튼 동작 등이 보이는 대로 사용해도 되는 그런 환경이라 일을 배우기는 매우 쉬웠습니다. 확실히 기기를 다루는 것 자체는 별일 아니지만, 기기를 통해 얻은 결과를 어떻게 해석하고 그 기기에서 어떻게 깔끔한 결과를 얻어내는지는 매우 다른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다음번에는 저도 직접 결과를 보면서 찍어보고 이를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가고 싶어요. 일행이 첫날은 5명, 다음에는 4명이었는데 확실히 4명은 최소인원이고 5명은 필요한 인원인 것 같아요. 4명이면 둘둘 쉬면서 일하고 할 수 밖에 없는데 둘이 쉬면 둘이서는 일의 진척속도가 제곱으로 느려지더라구요. 세명이 딱 노는 손 없이 일할 수 있는 인원이었구요. 앞으로 자주 쓸 것 같은데(심지어 가속기 추천순위 7순위에요!) 뭔가 많이 익숙해져야 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중간에 가까스로 시간을 맞춰 했던 제 생일파티ㅋㅋ 케익의 1/4를 바로 흡입했지만 뭔가 즐거웠어요! 새벽5시까지 다같이 밤새며 실험하는 것도 정말 새로운 경험인 것 같아요.

 

이번에는 9C line의 USAXS를 사용했는데, 그쪽은 거의 film을 위주로 본다고 합니다. solution sample의 경우에는 4C의 SAXS가 보다 실험 설계가 잘 되어있다고 해서 아마 다음번에는 4C로 가게 될 것이라 생각해요. 중간에 막 포항공대의 실험실에서 인사도 와서 실험에 대해 질문도 하는데, 그걸 보며 한국에서 우리 실험실이 어느 정도의 위치에 있는지 새삼스레 알게 되었습니다. 전혀 관련이 없는 분야가 유변학이란 단어로 찾을 때 제일 먼저 나오는 실험실이 우리 실험실이라니, 엄청난 것 같아요. 교수님께서도 늘 말씀하시지만... 이런 것은 안에 있을 때는 잘 모르더라도 밖에서 보면 확 실감나는 것들이니까요.

 

이번 여름학교가 기대됩니다. 뭔가 새롭고, 더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도록 지금부터 열심히 공부하고 또 스스로를 다잡아야 겠다는 생각이에요. 늘 이런 좋은 기회를 주시는 교수님, 감사합니다. 같이 다녀온 주영언니 주용선배 그리고 특히 낮은 곳에 임하신 구원자 상훈선배 넘넘 감사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