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개최한 16회 ICR에 참석하였습니다. 이런 저런 학회에 많이 참가했고, 특히 작년 재작년에 걸쳐 SOR에 참석하여 크게 열리는 주요 학회의 분위기는 어느 정도 알고 있었지만 처음 참가한 ICR은 더욱 컸습니다. 참가자가 많기도 하고, 당연히 그에 비례해서 발표도 많아 6개 정도의 세션장이 평행하게 열렸던 SOR과는 달리 10여개 이상의 세션이 동시에 진행되어, 같은 시간에 듣고 싶은 발표가 여러 개 있는 경우가 더 많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역시 불가능하고 그래서 거의 micro 쪽 세션에만 있었는데, 도움이 되는 발표도 많았고 생각을 정리할 기회도 많이 있었습니다.

이 학회에서는 직접 발표하지 않았기 때문에, 보통은 발표하는 날까지 연습+긴장으로 인한 피로로 인해 발표전까지 거의 집중하지 못하던 지난 학회들과는 달리, 처음부터 듣는 것에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그로 인해 학회가 더욱 긴 느낌이었습니다. 시차 적응 전에 8시 반에 시작하여 저녁 7시에 끝나는, 커피 브레이크 시간을 포스터 세션과 병행하여 진행하는 학회는, 생각보다 많은 체력을 요구하였습니다. 

이번에도 단연 이슈는 입자계 연구들이어서 Colloids and Suspensions 세션쪽 발표가 제일 많았지만, 주로 듣던 Interfacial Rheology, Micro-rheology & Microfluidics 세션도 SOR과 다르게 닫히는 적 없이 학회 내내 꾸준히 유지되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제가 관심 있던 microfluidics 분야는 보통 월, 화에 몰려있었습니다. 실험과 시뮬레이션 모두 많이 있었는데, 시뮬레이션은 잘 모르지만 실험 결과를 발표하는 것을 보면 역시, 교수님이 항상 말씀하시던, 실험을 다 해놓고 논문을 쓰려고 하지 말고 필요한 실험을 해야 한다, 는 것이 확연히 느껴졌습니다. 논문을 읽어도 그런 느낌이 들지만 연구 당사자가 과정과 결과를 논리 흐름에 따라서 강조하고 생략하는 라이브 발표를 보면, 그 내용이 우연히 실험하다가 나온 것이라던가(그런 경우도 가끔 있지만) 방대한 실험을 우선 한 뒤에 그걸 꿰어나간게 아니라, 실험을 하기 전에 충분한 배경 지식을 바탕으로 논리적은 이론을 만들고, 그를 통해 결과를 예측하고 그를 증명하는데 필요한 실험을 전략적으로 추진한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습니다. 항상 머리로는 알고, 그렇게 하려고 하고는 있는데 갑자기 확 느끼는 시점은 언제나 좀 늦는 것 같습니다. 별것 아닌 아이디어나 배경 이론 하나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들을 보면서 안다는 것과 확실히 100% 이해하고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의 차이를 느꼈고, 단편적으로 지식을 흡수하고 '이건 이해되는데'하고 넘어가는 공부 방식에 대해 반성하였습니다.

인상 깊던 발표들은 주로 microchannel에서의 점탄성 유체 거동에 대한 연구(contraction+기타 형태 유로)들과 좀 색다른 채널을 사용해 실용적인 뭔가를 만들어보려 했던 연구들입니다. microfluidics 쪽 말고 다른 연구들도 재밌게 들은 것들이 꽤 있었지만, 자세한 이론적 배경을 모르니 실험과 결과만 피상적으로 이해할 수 있어서,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을 다시 한 번 실감하였습니다. 또한 연구가 진행된 그룹들을 보며 많은 인원이 한 분야에 투입되는 것과 그 인원이 따로 다양한 분야를 연구하는 것에 대한 차이를 생각해 볼 기회도 가질 수 있었습니다.

학회장에서도 그렇지만 학회장 밖에서도 많은 생각을 하고 이런 저런 느낌을 받았습니다. 유럽은 처음 가보는데, 아무래도 서구의 문화가 많이 유입되어 있으니 친숙한 점도 있지만 차이점도 많이 느꼈습니다. 가장 크게 느낀 것은 느리다는 것과 인건비가 비싸다는 것입니다. 제대로 된 음식이 나오려면 한 시간 가까이 걸리는 나라에서 물건 주문하면 도저히 다음 날 올 것 같은 느낌은 안 듭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당일 배송도 합니다. 일견 우리나라가 훨씬 편리한 것 같지만 내가 당일 배송을 받는 사회라면 나도 사회에서 남에게 당일 배송을 해줘야 하고, 이것은 사회 전체의 스트레스를 높이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건비 문제는 예전에 호주에 갔을 때도 느꼈는데, 사람의 손이 닿으면 많이 비싸집니다. 어차피 서로가 서로에게 지불하는 양이 같이 많아지면 제로섬인데, 다른 나라에 비해서 그 총량을 증가시켜 차이점을 두는 것에(경제학적으로는 설명 가능하지만) 대한 합리성에 의구심이 많이 들었습니다.

학회를 들으면서는 연구에 대해, 밖에 돌아다니면서는 이런 저런 잡생각에, 학회 안팍으로 보고 느낀 것이 많은 귀한 일주일이었습니다. 이런 기회를 주신 것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