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 생각나는 일이 있어서 글을 쓰고 있었는데 아까 안 교수님이 비슷한 요지의 말씀을 하셔서 올리기가 좀 쑥스럽지만 그래도 적어보겠습니다.
음... 얼마 전에 외국인 친구를 데리고 모임에 간 적이 있는데요. 우리말을 잘 하기 때문에 크게 걱정하지 않았는데 사람들이 제가 생각 못한 반응을 보이더군요. 옆에 앉기 싫어하는 것은 물론이고 그 친구가 우리말로 인사를 하고 말을 걸었는데도 인사를 씹고, 자기들끼리 숙덕거리며 킥킥거렸습니다. 그 친구는 말은 안 했지만 굉장히 불쾌해했고 저도 옆에서 난처했어요. 그런데 나중에 모임이 끝나고 나서 제 친구에 대해 좋은 말만 하는 걸 보면서, 그럼 왜 그 앞에서는 그렇게 굴었나 조금 답답했습니다.
사실 그 사람들이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아니에요. 외국인이 신기하고 어렵고 그래서 수줍었던 것뿐이지요. 우리 실험실 사람들하고는 많이 다르죠. 외국인 앞에서 말문이 막혀서 난감해 할지언정 ^^ 수줍어서 어색하게 굴지는 않으니까요. 저 역시 많은 시간을 실험실에서 보내다 보니 모든 사람이 우리와 같을 거라고 지레짐작했던 것 같아요. 단지 경험이 없고 수줍음을 탔을 뿐인 그 분들을 보면서 우리 실험실 사람들이 얼마나 세련되었나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차이는 경험과 준비, 그로 인한 자신감이라 생각해요. 평소에 외국인 교수님들을 자주 접하고 영어로 발표 연습을 하면서 알게 모르게 내공이 쌓이고 있었을 거예요. 자연스럽게 환경과 경험을 흡수하면서 자신감도 쌓이는 것이지요. 솔직히 고백하건데, 저도 석사 첫 해에 외국 교수님과 학생들이 우리 실험실을 방문했을 때 I am Kim. 한 마디 하고는 선배들 등 뒤에 숨었답니다. (선배들이 다 김, 이, 하고 소개하길래 따라한 건데, 이놈의 실험실에는 왜 김 하고 이 밖에 없냐고 웃더군요.) 맨 처음에 얘기한 모임의 사람들과 같은 모습이었죠. 그러던 제가 지금은 외국인 교수님들을 안내하고 행사를 진행하는 우리 실험실 학생들을 당연하게 여긴다는 것이 그동안의 변화를 직접 보여주는 예인 것 같습니다.
공항에서 숙소까지, 또 데이 투어를 하는 동안 일대일로 전담해서 얘기를 하는 건 꼭 언어 때문이 아니라도 쉬운 일이 아니거든요. 그런데 누구에게 맡겨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건 사실 대단한 일입니다. 학술 발표 시간에도 다른 학생들은 대부분 뒷쪽에 앉아서 강연을 듣다가 끝나자마자 돌아갔지요. 우리는 마중 나가서 안면을 튼 덕에 더 쉽게 말 걸고 의논하고 사진 찍자고 부탁도 할 수 있었고요.
결국은 우리가 그간 닦아온 내공이 있었기 때문에 이번 행사를 잘 치룰 수 있었고, 또 그럼으로써 다시 내공을 쌓는 선순환이라고 생각해요. 그게 이번 행사가 우리에게 남긴 가장 큰 소득인 것 같습니다.

반면 아쉬운 점을 적자면, 행사 진행 때문에 학술 발표를 많이 놓쳤다는 점입니다. 제 경우는 금요일에 종일 자리를 비우느라 지도 교수님 두 분의 발표를 모두 놓쳤어요. 다른 진행 요원들도 왔다갔다 하느라 집중해서 듣지는 못했을 거예요. 행사 진행을 맡다 보면 어쩔 수 없는 부분이지만 전 그게 절반이 되다 보니 개인적으로 상당히 아쉽습니다. 행사 기념 동영상에 수고한 학생들 모습을 전혀 못 넣은 것도 많이 아쉽고요.

그래도 다들 수고 많으셨어요. 애쓴 만큼 잘 진행되고 칭찬 많이 들었으니 실컷 뿌듯해 하고 다음에 또 잘하도록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