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회 기간 내내 이렇게 스릴 있고 예상치 못한 일이 많이 생긴 적은 없었습니다. 매년 우리방에 한번씩 와서 세미나를 하는 미네소타 Scriven 제자인 남재욱 박사가 예정 없이 오게 되어서 방을 같이 사용하였는데요, 이때부터 재미있고 스릴있는일들의 시작이었습니다.

- Welcome reception
웰컴 리셉션을 가서 내가 아는 몇몇 사람들과 간단하게 인사 한 후 우연히 이번 학회 아이돌 스타이면서 학회 organizer인 Shabel group에서 막 졸업한 사람과 얘기를 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Prof. Shabel이 어떤 사람인지, 배경이 어떤지, 무슨 일에 관심이 있는지, group의 분위기는 어떤지 알아 보았습니다.
재욱이가 Francis, Carvalho와 같이 저녁 먹는데 같이 가지 않겠냐고 하더군요. 저야 좋은 기회다 싶어서 같이 간다고 했었는데, 여기에서 예상 외의 소득을 얻었습니다. 현재 ICSCT(미국 코팅학회) chair인 Ted Lightfoot을 만났는데요, 저를 전혀 모르는 사람인데, 이래저래 얘기하다가 서로 좀 알게 되었습니다. 영어 하면서 밥을 먹는 것, 특히 원어민과 영어를 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는 것은 항상 힘든 일이기에, 1시간정도 있었던 것 같지만 상당히 길게 느껴진 시간이었죠. 저에게 언제 졸업하냐, 졸업하고 뭐하냐 하는거 좀 물어보고… 여튼 그렇게 저녁을 함께 먹고 재욱이와 함께 방에 들어왔습니다.

-학회 첫날- 질문하기 연습, 일본 기업인과 저녁 식사.
다음날 아침 식사 또한 전날에 만난 Ted를 우연히 다시 만나서 이래저래 얘기하다가 그 사람이 예전에 kodac 에 있었고, 거기에 coating research group이 해체되면서 Dupont로 옮기고, 요즘은 어떤 일을 할 지 찾고 있다는 것을 좀 더 알게 되었습니다. 물론 저도 무슨 일 하는지 등등 얘기했구요. 그렇게 학회 첫날이 시작되었습니다.
이번엔 가면서 하나 맘먹은게 있는데요, 질문을 많이 하는거였습니다. 무엇보다 해외 학회에서 질문을 한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는 것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최대한 손을 많이 들어보고, 질문이 없는 발표에서는 한번 들어봐서 질문을 위한 질문도 한번 해보구요. 어차피 이번 학회에서 제 질문은 그냥 이름 없는 동양인 학생의 질문으로 보여질테니, 좀 어설픈 질문이어도 저를 기억할 사람이 거의 없을거라고 생각해서 정말 열심히 질문해 보았습니다. 이래야 다음에 학생 신분이 아닌 상황에서 다시 학회에 왔을 때 좀 더 익숙한 분위기로 질까지 고려한 질문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저녁엔 정말 독특하고 신기한 경험을 했습니다. 재욱이가 일본 회사(Nitto denco)에서 온 좀 높은 사람이랑 밥먹기로 했다는데 같이 가자고 하더군요. 저도 재미있는 기회다 싶어서 같이 먹었는데, 제가 모르는 세계에 대한 많은 경험을 했습니다. 같이 먹은 사람은 chief researcher인데, 역할은 학회에 가서 실력자를 찾아서 그 사람과 회사를 연결하는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이런 일을 15년 넘게 해서 그동안 코팅 관련 실력자들과는 거의 모든 연이 맺어져 있더라구요. 밥을 사주는 이유는 재욱이와 계속 인연을 유지하고 싶어 했고, 한국의 코팅 연구에 대한 정보를 얻고 싶어 하는 그런 느낌이 강했습니다. 뭐랄까… 서로 마주 앉아서 웃으면서 먹고 있지만, 참 재미있는 기분으로 밥을 먹었어요. 이런식으로 정보를 얻는구나… 싶더라구요. 정말 재미있던 것은, 그동안 매년 미네소타에 사람을 보냈었는데, 이번에는 미네소타로 보내지 않고 KIT의 Shabel group 에 관심을 갖고, 그 방에 회사 사람을 한명 보낼 계획을 세웠더라구요. 정말 뭐랄까… 힘의 균형이 옮겨져 가는 그런 느낌을 받았습니다. Scriven 교수가 돌아가시고 나서 이제 더 이상 미네소타에서는 그다지 얻을게 없다고 생각해서인지… 그런 흐름이 눈앞에 그대로 느껴지더라구요. 독일은
어쨌든 모국어가 영어가 아닌지라 언어에 대한 장벽이 더 높습니다. 안그래도 영어 못하는 일본인이 일이년 간다고 해서 뭐가 되지 않을 테니 지금 미네소타에서 KIT로 옮기려는 그런 계획은 상당히 긴 기간을 염두에 둔 결정이 아닐까 합니다. 그동안 관계가 있던 것도 아닌데, 필사적으로 Schael방과 연을 맺으려는 노력이 참 살벌했습니다.

-학회 2일째- 발표 & Francis 교수의 propose
오전 9시 30분에 발표를 했습니다. 평소에 제 영어 발표는 너무 급하다는 지적을 계속 받았습니다. 보통 불안하면 얼렁 끝내려는 마음에 빨리 하게 되고, 문장도 깔끔하지 못하게 되구요. 이번 학회 발표는 저에게 상당히 중요한 의미가 있기에 연습을 많이 했는데요, 특히 시선과 발표 속도에 신경을 많이 신경 썼습니다. 그래서 스티브 잡스의 발표를 보면서 제가 발표한 속도랑 스티브 잡스의 속도를 비교해 보았는데요, 생각보다 스티브 잡스가 말하는 속도가 저보다 느리더라구요. 그래서 생각해 보니 발표 잘하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발표도 그다지 빠르지 않으면서 문장이 상당히 또박또박했었습니다. 특히 문장 사이 간격이 명확했구요. 그런데 제 발표는 문장도 좀 애매하고, 문장과 문장 사이가 자꾸 연결이 되구요. 연습 부족에 조급함… 기술 부족, 뭐 그런게 문제였던거죠. 그래서 이번엔 문장을 명확하고 간결하게 만들고, 문장과 문장 사이를 간격을 두고 연습을 하였는데, 뭐랄까… 나름 말도 안더듬고, 강조 하고 싶은 부분은 좀 더 천천히 얘기할 수도 있고… 그랬습니다. 아침에 2번 더 연습하고 발표장을 갔습니다. 운좋았던 것은 제 앞에 발표한 3명 중 한명 빼곤 아마추어 분위기가 흠뻑 묻어나는 발표를 해서 여러모로 부담 안느끼고 여유롭게 했죠^^ 발표 하면서 내가 관심 있는 사람이 왔는지 안왔는지 보고, 저사람이 관심을 가지는 지 아닌지... 끝나고 나니 몇 명이 질문을 하면서 자료를 요청했습니다.  특히 기억하는 사람은 스위스 ILFORD 연구원인데요, 자기네도 silica/PVA suspension으로 porous structure를 만드는데, 믹싱을 아주 짧게 한다고 하네요. 그런데 흡착에 그렇게 영향을 받을거라곤 몰랐다고 가서 바로 해봐야겠다고 하네요. 운좋게도 좌장이 다시 Ted Lightfoot이었습니다. 학회 기간 매일 봐서 나름 익숙했는데, 내 발표를 처음 봤는데, 참 재미있다고 하네요. 그러면서 역시 자료를 보내주면 안되냐고 했습니다.
특별히 중요하고 재미있는 점은 Francis 교수님에 대한 얘기입니다.
발표가 끝나고 성교수님께 연구 잘했다고 하시고, 저에게 오시더니 진지하고 천천히 질문을 하더군요. 흡착이 증가하면 왜 스트레스가 증가하냐... 늘 느끼지만 진지한 스타일입니다.
특히 더 재미있는 일은 저녁에 했던 포스터 발표 시간이었습니다. 포스터를 보고 나서 주영이, 선진이에게 가서 잡담하고 있는데 잠시후 Francis 교수님이 천천히 오시더니 말을 거시더군요. 윤동이 잘있냐, 윤동이 참 잘했고, 내용을 JAIChE에 submit 했다고 하면서요… 그러면서 학생이 또 한명 오면 좋겠다고 하시더군요. 학생이 왔으면 한다는 말을 워낙 명료하게 말씀하셔서 저 뿐 아니라 주영이, 선진이 모두 좀 놀랐습니다. Francis가 저를 통해서 단기 학생과 일하는 법을 배웠고, 그걸 윤동이에게 적용해 보았는데 결과가 아주 잘 나왔다고 하네요. 지금까지 저희와 일하는 것에 대해 상당히 만족해하는 느낌이었습니다. 안교수님으로부터는 밖에서 우리 방 사람들 칭찬 많이 한다는 말씀을 들어 왔지만, 이렇게 실제로 우리방 사람들이 참 잘한다면서, 계속 지속적인 교류를 원한다는 말을 외국 교수님으로부터 직접 들어본 것은 처음이었어요. 교수님과 구체적인 얘기를 해봤냐고 물어봤는데 아직 하지는 않았답니다. 아마 그런 생각을 한 지 얼마 되지 않았나봅니다. 여튼, 참 듣기 좋은 소리였어요. 저에게는 졸업하고 뭐하고 싶냐, 나중에 무슨일 하고 싶냐 등등 그런걸 물어봐서 나름 평소 생각하고 있는 제 미래의 역할을 얘기해 줬더니 웃더군요…

-학회 3일째- Prof. Willembacher의 실험실 소개
학회가 오전에만 있어서 특별한 것은 없었습니다. 이날의 하이라이트는 주영이가 있는 Prof. Willembacher의 랩투어를 하기로 했는데요, 성교수님이 말씀하시고 나니 Prof. Willembacher가 직접 해주겠다고 하시더군요. 2시에 실험실을 갔고, Prof. Willembacher가 실험실 연구 주제, 과제 상황, 인력 상황 등 세부적인 내용까지 아주 자세히 말씀해 주시는데요, 무려 1시간 30분간을 했습니다. 엄청 놀랐는데요, 비공식적으로 주영이에게 실험실 보여달라고 시작했던 일이 어떻게 하다보니 교수님이 직접 실험실을 소개해 주는 상황으로 발전한 거에 정말 많이 놀랐습니다. 실험실의 연구 주제와 교수님의 철학 등이 마치 안교수님이 독일가서 실험실을 꾸민 듯한 느낌이었죠. 주영이가 일을 아주 잘하고 있다면서, 그 분 또한 지속적으로 우리방 사람들과 일하기를 바라는 느낌을 많이 받았습니다. 생각해보니 교수님 역량도 대단하고 돈도 충분히 있지만 상대적으로 미국으로 사람이 몰려 우리방 사람들 같은 똑똑하고 일 잘하는 사람들이 계속 고픈 느낌일 수 있겠단 생각을 했습니다. Prof. Francis도 그렇고 Prof. Willembacher도 그렇고, 우리방 사람들은 똑똑하면서 일도 열심히 하는 것으로 이미지가 굳어진 느낌이었습니다. 실제 학회에서 다른 박사과정 학생의 발표를 보고, 쉬는 시간에 질문을 하면서 얘기를 해보면 연구 주제에 상관없이 저 사람의 내공이 얼마인지 어느 정도 느낌이 오는데, 그런면에서 우리방 사람들이 몰입하는 태도나 진지함은 어디에 가도 잘 할수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여튼,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마치면서 – 전망
코팅 기술은 소위 논문이 안되지만 엄청난 시장을 형성하는 아주 독특한 기술입니다. 그래서 논문을 중시하는 풍토에서는 코팅을 연구하기 힘든데, KIT의 Schabel group은 예전 Minnesota의 Scriven group의 내공을 느낄 수 없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독보적인 연구 집단이었습니다. 15명 학생이 모두 고분자 필름의 건조 중 필름의 농도 구배에 매달려 있는 느낌이라 참 신기했는데, 결국 실력에 상관 없이 독점을 하고 있는 상태랄까요… 유럽의 이슈는 green 에너지이고, 제조업은 고분자 태양 전지에 집중되어 있는데, 알고 보니 고분자 태양 전지는 모두 고분자 필름으로 이루어져 있더라구요. 결국 필름 제조 과정의 핵심인 건조를 유일하게 연구하고 있는 KIT의 Schabel 그룹이 그 사람의 내공엔 상관 없이 엄청난 자원과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게다가 독자적으로 연구 인력을 양성할 수 없는 일본의 기업은 이제 minnesota에서 KIT로 관심을 옮겨가고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일본 기업의 장점인 디스플레이 광학 필름 제조 공정은 고분자 태양 전지의 공정과 거의 같거덩요. 제 생각엔 일본이 경험은 있지만 기술이 없어서 그걸 채우고 싶을테고, 더불어 유럽의 회사와 connection을 얻기 위해 Schabel group을 공략하려는 것 같습니다. 아직은 고분자 태양전지가 상용화가 안되어있지만 상용화가 되는 순간 정말로 엄청난 시장이 될테니까요.
이런 상황에서 우리 나라 기업은 어떻게 해야 하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 과제를 하는 기업들이 이런 상황을 아는지 궁금하더군요. 모르지는 않을텐데, 어떤 식으로 공략을 해야 할지에 대해서는 아직 plan이 되어 있지 않을 수 있구요. Shabel은 교수가 된지 얼마 안되었습니다. 일본 기업은 이렇게 Shabel group을 공략해서 그 방 졸업생들과 친하게 지내면, 그방 사람들이 대부분 유럽의 에너지 회사에 가게 되고, 그러면 자연스레 실험실에서 같이 지내던 일본 엔지니어와 줄이 닿을 테니… 이렇게 시장이 점령되면 우리나라 기업이 시장을 뚫기는 참 힘들 수 있겠더라구요. 이번 학회에서 즐거운 점도 많았지만 앞으로 상황을 생각해보니 어영부영 있으면 그다지 즐겁지 않은 미래가 기다리겠단 생각이 드네요. 앞으로 연구 뿐 아니라 멀지 않은 미래에서 일본에 밀리지 않기 위해 제가 해야 할 일을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지도 교수님 없이 학회를 가서인지 이자리, 저자리 막 낄 수 있었습니다. 제 자신이 마치 사업가가 된 듯한 느낌이더군요. 그만큼 제 처신에 대해서 제가 책임을 져야 하구요. 이럼 많은 경험을 하고 많은 생각을 하게 해 주심 교수님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