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벤대학 파견 후기...

지난 1년간 벨기에의 루벤이라는 다소 생소한 도시에서의 파견생활을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처음에는 해외의 소위 잘나가는 그룹에서의 생활, 또 유럽에서의 생활이라는 것에 기대를 가지고 파견 준비를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막상 출국 직전에는, 과연 '내가 우리 실험실의 이름을 달고 파견을 가서 잘 해낼 수 있을까' 하는 걱정에 꼭 군대가는 기분이 들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벨기에에 도착, Jan Vermant 교수님의 환영을 받으며 앞으로 어떤 일을 할 것인가에 대해 이야기도 나누고, 초기 결과를 가지고 미팅을 하면서 즐겁게 또 열심히 일을 시작했던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시간이 너무 빨리 흐른다는 생각과, 기대했던 만큼의 결과들이 나오지 않자 답답하고 조급한 마음을 많이 가지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이탈리아에서 열린 SoftComp학회에서의 발표는 제 자신을 돌아보는 좋은 중간점검도 되고, 이후에 연구를 진행하는데 있어 좋은 약이 되었습니다. 끝 무렵에는 그간의 연구성과를 하나의 스토리로 정리하고, 또 그곳 실험실에서 발표를 하고, 이후의 방향에 대한 디스커션을 하는 과정을 겪으며 많은 조언을 얻기도 하였습니다.  

지난 1년간의 성과를 보자면, 우선 2D (interface trap) suspension에 대한 simulation과 실제 실험과의 비교를 진행하였고, 그 과정에서 실제 실험에서 어떠한 힘들이 중요하게 작용하는 지를 알 수 있었습니다. 또한 부수적으로 복잡한 입자 network의 구조를 분석하는 방법을 익힐 수 있었습니다. 또한 Jan Vermant 교수님 그리고 이곳 박사과정 학생들과 여러 디스커션을 하는 중에 실제 입자계에 대한 감과, 이곳에서 다루고자 하는 이슈들에 대한 지식을 얻은 것 역시 소중한 경험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연구면에서는 여전히 많이 부족하다고 느낍니다. 제가 생각했던 것 만큼, 실험과의 직접적인 비교를 수행하지 못하였고 유동장 내에서 입자의 구조와 stress를 연관짓는 부분역시 아직 부족한 실정입니다. 이는 아무래도 혼자 simulation을 하는 과정에서 진척이 느리지 않았나 하는 생각입니다.

유럽에서의 생활은 더할나위 없이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우려와는 달리 금새 그곳 생활에 적응하여, 교통체증 없이 자전거로 출퇴근하고, 식사는 현지 학교식당에서 어설픈 양식으로 매끼 해결하고, 또 가끔씩은 벨기에 맥주 프랑스 와인을 즐기며 주말을 보내기도 하였습니다. 이곳 실험실 학생들은 생각보다 굉장히 가정적 이어서, 금요일 저녁이면 일찍 퇴근하여 다들 자기 집으로 돌아갑니다. 그리곤 주말은 가족과 함께 보내고, 일요일 저녁이면 집에 가져갔던 빨래감을 들고 다시 돌아오는...참 건전한 생활을 즐기더군요. 그래서인지 막상 벨기에 친구들과는 그리 많은 여가시간을 보낸 것 같지 않습니다. 하지만 실험실 구성원의 거의 반이 international student이어서 저는 주로 이 친구들과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또 우리처럼 많은 회식이 있지는 않았지만, 크리스마스 파티 또는 무려 3박4일 짜리 실험실 MT 등은 좋은 추억으로 남아있습니다. 루벤을 떠나기 전에 실험실 친구들이 준비해준 선물이나 작은 파티들 역시 너무나 고마웠고, 다른 한편으로는 세계의 young rheologist 들과 좋은 친분을 쌓았다는 흐뭇한 생각이 들기도 하였습니다.

이곳에서 생활하면서 제가 느꼈던 실험실의 장접을 꼽자면 우선 벽이 없다는 것입니다. 실험실 선후배, 교수님과 학생들 사이에 정말 거의 벽이 없었습니다. 워낙 한 공간에 같이 있다보니, 하루에도 몇번씩 서로 만나게 되고, 또 그런 과정에서 가벼운 농담도 하고, 또 중요한 질문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다가 중요한 디스커션도 하게 되고... 그점이 제게는 가장 좋아보였습니다. 아주 간단한 질문이여도 그냥 서로 물어보고, 또 서로 기꺼이 도움을 주는 분위기였습니다. 또다른 장점 하나를 꼽자면 잘 되어있는 네트워크를 들고 싶습니다. 작게는 실험실 단위에서도 네분의 교수님이 학생들을 지도하는 시스템입니다. 어떻게 보면 서로 다른 그룹이지만 한 학생을 한두분의 교수님이 지도하면서 결국은 하나의 실험실 처럼 운영이 됩니다. 또 더 크게는, 유럽 내에서 우리가 아는 큰 학회말고도 크고작은 워크샵들이 참 많이 열립니다. 그냥 하루 혹은 이틀 일정으로 자신의 연구결과를 발표하고, 이에대한 디스커션 및 코웍을 진행하는 이벤트들이 많았습니다. 학회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약간의 논란이 될 수 있는 중간 결과들도 발표하고, 또 이에대해 여러 랩에서 자신의 의견을 주기도 합니다. 또 실험장비, 샘플, 또는 디스커션이 필요할때는 언제든 유럽 곳곳의 실험실에 방문하여 서로 도움을 주고 받는 것 역시 일반적입니다. 저처럼 긴 방문학생은 없었지만, 몇주 혹은 몇달씩 파견을 나가 공동 연구를 진행하는 것은 아주 일반적이였습니다. 위에서 말한 SoftComp 역시 이를 권장하기 위해 조성된 기관이였습니다. 결국 유럽이, 마치 EU처럼, 하나의 네트워크를 구성하여 같이 연구를 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곳에서 연구를 진행하고, 또 생활을 하면서 부러웠던 점 중 하나는, 그들의 여유였습니다. 벨기에가 어떤 산업으로 강국이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선진국에서 느낄 수 있는 삶의 여유를 그들에게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일반적인 생활에서도, 자신의 근무시간과 여가시간을 잘 구분하여 챙기고, 여름이면 꼭 몇주씩 휴가도 갑니다. 특히 작은 자영업이라 할 수 있는 여러 가게들(볼링장, 미용실, ...)도 여름이면 몇주씩 영업을 안합니다. 이러한 분위기는 실험실에도 역시 묻어나서, 학생들도 대체적으로 자신의 여가시간 휴가 등을 잘 챙기는 편입니다. 그러면서도 세금을 제한 회사연봉에 준하는 월급을 받아가면서 나름 윤택한 생활을 즐기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한편으로는 그래서인지, 자기 시간을 챙기는 만큼 본인의 일에대한 책임감 역시 강해서, 본인이 학생이라기 보다는 자신의 장비와 업무를 담당하는 한 책임자로 생각한다는 느낌을 받기도 했습니다. 우리의 연구환경도 나날이 좋아지고 있지만, 역시 가진 것 없는 벨기에에 이런면에서 밀린다는 것이 조금 배아프기도 또 자극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선진국의 문턱에서 오랜시간 헤메고 있는 대한민국의 현실이 조금은 안타깝기도 하지만, 그 속의 한 구성원으로서 제 역할을 다 해야겠다는 생각입니다.

끝으로, 지난 1년간 너무나 소중한 경험을 쌓게 허락해주신 교수님과, 멀리서 온 학생을 친절히 care해준 Jan Vermant 교수님, 또 실험실 후배에게 크고작은 많은 도움을 주신 승재형에게 감사하다는 말씀 전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