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는 처음 가봤는데, 전에 들어본 얘기가 대부분 맞는 것 같네요. 직접 가서 관찰하니 더 재미 있었어요.
상하이를 한 마디로 정의하면 fast-growing입니다. 가보면 참 화려해요. 어딜 가나 시야를 가리는 3,40층짜리 건물과 끝없이 펼쳐진 화려한 조명, 대형 영상 광고, 서울보다 세 배쯤 시설이 좋은 지하철을 보면서 입이 벌어지더군요. 하지만 너무 빨리 커가다 보니 아직 외면적 발전에 그치고 있다는 인상이었습니다. 지하철이나 끝없는 마천루, 자기 부상 열차 같은 대형 인프라는 최신 설비를 갖추고 있으면서도 정작 어딜 가나 수압이 약해서 화장실에 물이 잘 안 내려갔거든요. 도시에 엄청난 돈이 몰리는 와중에 큰 돈을 들여서 눈에 보이는 것을 빠르게 바꾸었지만 속은 아직 따라가지 못한 것 같았습니다. 최신식의 고층 빌딩 사이를 지나가다가도 한 골목 뒤로 돌아가면 저런 데서 외풍 막고 살 수 있나 싶은 철골 구조물에 더러운 구정물... 지하철 역에서 한참 서서 사람들을 구경해 보니 외모에서 느껴지는 빈부차도 큰 것 같았고... 좋은 곳은 너무 좋고, 구린 곳은 너무 구린 양극단의 도시였어요. 전자 때문에 잠깐 돌아보고 유람하기엔 좋지만, 후자 때문에 눌러앉아 살기엔 제 수준에선 아직 많이 힘든 곳이었습니다.  
아래 선형 오빠가 적은 후진적 문화도 그런 시간차 공격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한 1,20년 쯤 지나 새로운 도시 문화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 성인이 되고 사회를 주도할 무렵이 되면 문화도 외형적 발전에 걸맞게 성숙해지겠죠.
하지만 한편으로는 중국 사람들이 정말 바뀔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돌아다니면서 재미있었던 것 중 하나가, 어딜 가나 젊은 연인들이 철썩 들러붙어서 연애 행각을 한다는 점이었어요. 들은 바로는 중국 사람들이 남의 눈을 신경쓰지 않기 때문이라고 하더군요. 바꿔 말하면 나도 남을 신경 안 쓴다는, 과장해서 말하자면 타인을 굳이 배려하지 않는다는 뜻도 되는 것 같습니다. 실제로 사람이 많은 곳을 걷다 보면 (어딜 가나 많았지만) 자기가 가는 길 앞에 사람이 있거나 없거나 보지도 않고 직진하더군요. 보행 신호에 그냥 들이대는 버스도 그렇고... 이런 게 우리 눈으로 보기에는 교통 신호를 안 지키는 후진적 문화일 수도 있지만,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는다'는 중국적 문화의 심한 예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런데 그게 13억 인구의 문화적 특징이라면 그 사람들이 굳이 서양식 예절과 규범에 맞춰 저들의 국민성을 "발전"시킬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또한 상하이라는 도시는 이렇게 빠르게 바뀌고 있을지언정, 그게 그 넓은 중국 전체에 얼마나 빨리 변화를 가져오느냐도 문제고요.
하지만 처음에 말했듯이, 그 변화의 속도만큼은 분명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지금은 큰 돈을 쥔 사람들이 겉모습만을 바꾸고 있지만, 차츰 부가 재편성되고 내적 인프라가 확충되어 전반적인 평균이 올라간다면... 구경하기 재미있을 것 같아요. 혹자는 당장이라도 팍스 아메리카나가 지고 팍스 시니카가 올 것처럼 말하는데, 중국이 10년 후에 미국을 앞지를 거란 얘기는 10년 전에도 나왔던 얘기라고 하니 곧 그렇게 손바닥 뒤집듯이 바뀔 것 같지는 않습니다만, 최소한 제가 살아있을 앞으로의 50여년 간은 구경하는 재미가 좀 있을 것 같습니다. 시대의 구경꾼이 된 기분으로...

학회로 말하자면, 약간은 브리짓 존스가 된 기분이었습니다. 코스튬 파티라고 해서 플레이보이 토끼 의상 입고 갔는데 알고 보니 동네 가든 파티더라는... 한 마디로 너무 힘준 거죠. 재밌고 흥미로운 발표도 드문드문 있긴 했지만, 발표 내용이나 발표 기술 수준이 학회라기 보단 룸세미나 수준이었습니다. 우리끼리 여러 번 발표 연습하면서 각자 경험을 쌓고 훈련하는 좋은 기회가 되었지만, 여기는 우리가 겨룰 곳이 아니었다는 느낌이었습니다. 작년에는 중국이나 일본이나 다들 발표 잘했다더니 그 사람들 다 졸업하고 신입생들이 발표하러 왔나 봐요. 봐도 봐도 반가운 야마다 상 같은 사람도 있었지만요.
그래서인지 아닌지, 대부분의 질문자와 발표자가 의사 소통이 안 돼서 30초간 말문 막혔다가 결국 동문서답하는 촌극이 쉬지 않고 벌어졌습니다. 생각해 보니 제가 그간 참석했던 국제 학회/워크샵은 모두 영어권 국가에서 했거나 그런 사람들과 했던 행사여서 이런 의사 소통 불능의 경험이 처음이었던 것 같아요. 처음엔 답답하고 지루했는데, 이게 이 행사의 의미라는 생각이 차츰 들었습니다. 영어가 안 되고 연구가 완성되지 않았어도 같이 모여서 일종의 아마추어 리그를 치루는 거죠. 결과물인 발표 자체를 매끄럽게 마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준비하는 과정에도 의미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첫날에 와타나베 교수님이 질문 시간을 무한정으로 허용하는 바람에 전체 일정이 2시간 가까이 늦어졌는데, 그분도 그런 뜻으로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날 질문하고 답한 사람들 모두 좋은 경험이 됐으리라 생각합니다.

그 여세를 몰아 내년 한중일 학회는 무려 태국에서 열린다고 합니다. 마쓰부치 교수님이 태국을 방문했던 인연으로 교수님 한 분과 학생 네 명이 이번에 태국에서 참여했거든요. GNP 대비 R&D 투자율이 0.3%이고 (우리나라는 3% 정도) 유변학을 연구하는 교수님이 딱 한 분 계신다던가 그렇고, 마쓰부치 교수님이 태국에 다녀간 게 유력 일간지 1면(?) 기사에 사진과 함께 났을 정도라네요. 신혼여행지로만 알고 있는 태국도 내년엔 이번 중국처럼 괄목상대하게 해줄까요? 제 경험상 태국 영어는 중국 영어보다 세 배쯤 알아듣기 어렵던데, 내년 이 시간도 또한 풍성한 경험의 장이 될 것 같습니다.

하여 열심히 보고 듣고 돌아왔습니다. 보내주신 교수님들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