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아직도 시차적응이 덜 되어 머리가 어질어질한 윤지원입니다. 열흘이라는 시간이 어느순간 증발한듯, 그렇게 한국에서의 시간이 또 이어지고 있네요. 기말고사라는 이름으로요... 분명 공부하겠다고 들고간 노트는 실험노트로 쓰이고 비행기 안에서는 시차적응이라는 핑계로 잠만 자고, 그래도 즐거웠던 시간들을 떠올리면 힘이 나요!

 

처음에 독일을 가게될 지도 모른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다른 모든 생각을 제치고 '비행기'라는 말에 흥분했던 것 같아요. 이륙할 때의 우웅-하는 소음과 붕 뜨는 듯한 그 순간의 느낌을 지나면 길게는 13시간에 가까운 여정을 nonstop으로 가는 거잖아요. 고소공포증이 무색하게도 비행기는 언제나 재밌는 탈 것중 하나죠. 탈 기회도 별로 없고요. 초딩같지만 정말로, 게다가 루프트한자의 안정적인 비행을 신뢰하는 저로서는 신난다고 붕붕 뜰 수 밖에요. 루프트한자의 조종사들은 분명 신의 손일 거에요. 어쩜 그리 이착륙이 안정적인지... 이건 주용선배도 같이 인정한 사실이랍니다. 기내 좌석이 다른 유럽 항공사에 비해 조금 좁다고는 하는데, 앞에 사람이 앉지만 않는다면 편안하게 여행할 수 있는 정도의 좌석이에요. 아, 그리고 저는 이번 여행에서 비행기 안의 모든 마실 것을 다 마셔봤는데 술 종류 꽤 괜찮았던 기억이 있어요.

 

독일을 가게 된다는 생각으로 비행기에 환호했던 것도 사실 잠시였죠. 중간고사가 끝나고 떠날 날들이 다가오면서 이것이 여행이 아닌 실험을 위한 것임을 상기하게 되더라구요. 챙겨야 할 기기들도 많고, 포장도 큰일이고, 실험 계획이 수정되어서 날아오고, 온라인으로 safety training도 받아야 했고요. 떠나기 전날까지 학교에 나와 빠진 것은 없는지 꼼꼼히 확인해보는데도 불안불안하더라구요. 아무래도 처음으로 외국으로 가보는 실험인만큼 긴장이 더했던 것 같아요. 선배는 이젠 익숙한 듯 매우 쪼그만 트렁크 하나로 슉 오셨는데 저는 깨질까 두려워 옷을 쑤셔넣다보니 결국... 26인치 트렁크가 다 차고 옷은 매일매일 갈아입고도 남고... 짐을 좀 잘 싸야 할 것 같아요. 돌아올 때는 이상하게 무게가 늘어서 추가요금 낼뻔 한 것은 비밀아닌 비밀이에요. 4kg의 무게를 따로 들고오느라 아직도 팔이 아프네요.

 

갈 때는 뮌헨에서, 올 때는 프랑크푸르트에서 환승을 했는데 프랑크푸르트 환승 통로 엄청 길어요. 정말 길어요. 돌아올 때 앞 비행기가 연착해서 30분 정도 밖에 여유가 없어서 미친듯이 뛰었는데 겨우 도착했어요. 계획했던 연구실 선물도 못샀지만... 독일 면세점은 비싸더라구요. 환승을 하고 도착한 곳은 함부르크, HAMBURGER 입니다. 햄버거의 본고장이라고 하던데 생각보다 맥도날드는 잘 안보이더라구요. 역시 원조의 위엄인가 봐요. 함부르크에 도착한 순간에는 갑작스레 바뀐 풍경에 언어 변환 스위치도 어설프게 온이 되어있는지라 버벅대며 교통권을 사고 했네요. 교통권 살때 친절히 도와주시던 아주머니, 호스텔을 찾기 위해 헤맬 때 호스텔까지 자전거를 타고 갔다와준 친절한 아저씨... 다들 그런데 어찌 그리 영어를 잘할까요. 프랑스건 독일이건 생각보다 영어를 너무너무 잘해서 놀랐어요.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하는데 막힘이 없는 모습. 물론 모든 독일인이 그런것은 아님을 알았지만, 모아니면 도인가봐요. 잘하는 분들은 너무 잘하고, 그리고 전반적으로 매우 친절한 독일분들이 많았답니다.

 

다음날은 선형선배를 기다리며 함부르크 시내를 이리저리 구경했어요. 함부르크는 조그만 도시에요. 인구도 적고, 크기는 그렇게 작지는 않지만 관광지로서 유명하지는 않기 때문에 북적대거나 하지도 않고요. 유명한 소위 찍기 관광지도 없어서 오히려 좋았습니다. 그날 찍은 사진들을 보면 그리 날씨가 좋았는데... 현규 선배 말로는 매우 이례적인 날씨였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리고 저희가 실험하는 날들은 다 날씨가 매우 안좋았어요. 중간엔 눈도 오고, 우박도 내리고! 시청사 주변에 있던 크리스마스 마켓은 매우 흥겨운 분위기였어요. 분명 점심을 먹었음에도 항상 고픈 배는 성장기라서 그런걸까요. 소세지도 하나먹고, 목마르니 물도 마시고. 맥주보다 물이 비싼 독일을 실감하고 왔답니다. 크리스마스 마켓의 분위기에는 무언가 사람을 들뜨게 하는 것이 있어요. 그들의 명절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고요. 역시 크리스마스는 가족끼리 보내는게 참맛이죠- 그래서 저는 올해도 가족과... 케빈과...

 

둘째날 샘플을 만들고, 셋째날 현규선배와 함께 원래는 실험을 시작했어야 했지만 빔이 alignment 중이라 실험을 할 수가 없었어요. 아직도 기억나는 DESY의 chemistry lab 옆의 coffee room.  자주 이용하게 될거라는 말에 어리둥절했지만... 정말 그렇더라구요! 옆의 밴딩머신까지요.

 

음, 우선 DESY에 대해 간략히 말하면 정문으로 들어가면 바로 옆에 guest house가 있어요. 저는 여자라는 특권으로 꼬꼬마지만 싱글룸을 썼는데요, 와 정말 좋아요. 제 방보다 훨씬 크고 좋아요. 옷장 작은 건 10일만 있으면 되니 전혀 문제가 안되고요. 키친도 바로 밑층에 있었고, 세탁도 지하에서 3유로면 할 수 있었어요. 냉장고와 식기는 방번호가 써진 칸에 열쇠로 열고 잠그게 되있어서 음식물 도둑맞는 호스텔과 같은 사태는 전혀 벌어지지 않아요. 그래서 저희는 마트를 애용했답니다. 여담이지만 독일 식당은 매우 비싸요. 못사먹고 굶으면서 여행했던 기억이 또 새록새록하네요. 마트에서 사둔 음식물을 쟁여두고 저녁에 혹은 야식으로 먹으면서 잔치를 가끔 벌였어요. 삼겹살이 1kg에 4유로라는 가격을 보고 한번 흥분해서 구워먹었는데... 음... 좀 죄송하더라구요. 그냥 그쪽 분들도 삼겹살의 묘미를 아셨으면 좋겠어요. 새롭게 안건 제가 배고프면 신경이 날카로워지나봐요! 피자 늦게 구워진다고 막 피자를 때릴 기세로 쳐다봤나봐요.

 

그리고 게스트 하우스에서 쭉 걸어가다보면(기준을 하늘색 굴뚝으로 삼으면 되요. 굴뚝!) chemistry lab이 나옵니다. 여기서 샘플을 만들고 그 옆에 가서 빔을 찍고, 빔도 안되고 샘플도 만들게 없으면 그 옆에 있는 coffee room(아예 다른 건물이에요)으로 가서 커피를 마시며 기다리는 것이 일상이었어요. 3일째까지는요. 커피룸에서는 커피 메이커가 두대가 있고 한잔에 0.4유로씩 내게 되어있어요. 자발적인 기금인지라 가끔 10유로 지폐도 그 함에 들어있더라구요. 저희 연구실도 그렇게 하면 잘 모일까요? 갓내린 커피는 참 맛있기에 저는 금새 사용방법을 익혀서 슉슉 내려먹었답니다. 신기한 것이 그곳에서는 우유가 4% 지방인 고지방 우유가 따로 있어요. 커피에 넣어마시면 부드럽고 맛있어서 자주 위장을 달래는 용도로 마셨지요. 아, 식당은 게스트 하우스에서 chemistry lab 과 다른 방향으로 걸어가다보면 나오는데요, 아침과 점심을 하는 식당과 저녁 위주인 Bistro가 있어요. Bistro는 정말 정말 비싼데 정말 정말 맛이 없어요. 하루 거기서 먹고 다들 생각한 것이 아, 뭘 먹든 이제 이번보단 맛있겠구나 싶었어요... 슬픈 자기합리화였죠. 아침 점심하는 식당은 꽤 나름 괜찮았어요. 다만 먹을 거라곤 소세지와 계란 오믈렛 뿐이라서, 하루 이틀 먹은 것 외에는 주로 아침을 만들어 먹고는 했어요. Movenwick? 하는 이름의 요구르트가 맛있답니다. 핫쵸콜릿도 진짜 맛있어요!

 

와이파이는 빔 실험하는 장소에서는 잡히지를 않아서 숙소에 들어갔을 때나 쓸 수 있었어요. 핸드폰으로 처음에는 신나게 카톡을 했는데, 뒤에는 한번 보내는데 십분이 넘게 걸리니 포기하게 되더라구요. 실험하는데 전파가 방해될까봐 이상하게 무서웠어요. 빔은 다행히 4일째 고쳐졌고 그 이후에는 큰 문제없이 쭉 작동이 되어서 쓰는데도 문제가 없었답니다. 이후에는 4명이 둘 둘 나뉘어서 오전 오후 팀으로 아예 다른 시간대에서 살았어요. 선배들은 쭉 깨있었지만 저는 중간에 감기걸려서 겨우 살아났답니다.  모두가 계획했던 것 이상으로 궁금한 것도 많이 찍어보면서 모자람 없이 실험했구요, 저도 마지막에는 직접 하치에 들어가 로딩도 해보았습니다^^ 주영언니 샘플을 제가 로딩했는데 결과가 제대로 나올지 모르겠네요. 빔타임이 중간에 거의 문제없이(한번 중간에 끊겨서 다시한 실험도 있지만요) 돌아가서 예상외로 많은 걸 했다고 다같이 뿌듯해하면서 막날에 조촐한 축하파티도 했답니다.

 

이번 실험을 하면서 담번에 만약 오게된다면 훨씬 더 익숙하게 진행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을 했어요. 현규선배, 선형선배 둘다 저랑 주용선배를 알려주느라 초반에는 실험이 조금 지지부진했고 게다가 실험 프로토콜- 건조조건, exposure time, exposure period 등-에 대한 정보도 없었고요. 또한 기기 자체의 사용이 처음이다보니 신중해지는 장점도 있지만 빨리 진행되지는 못했어요. 하지만 후반부에 가서는 컴퓨터로 조절하는 것은 자신있어지더라고요... 로딩도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어요! 물론 이런 것도 큰 자산이고, 중간중간에 선형선배에게 스캐터링 이야기도 듣고 그런 것도 정말 좋은 경험이었어요. 제가 정말로 지식이 풍부했다면 선형선배와 디스커션하면서 조금더 많은 걸 얻었을 텐데, 지금의 저에게 흡수되는 지식의 양이 한계가 있다는 것이 너무 안타깝기도 하더라구요. 정말ㅜㅜ 공부열심히 해야겠어요! 새롭게 자극하고 발전하려고 하는 요즘입니다.

 

분명 열흘이라는 짧다면 짧은 시간을 보냈는데, 생각한 것들 배워야 했던 것들 그런것들을 모두 따져보면 엄청난 시간을 보낸 것 같아요. 확실히 익숙한 환경에서 벗어나면... 그동안의 제 자신을 새롭게 점검하고 다질 수 있는 시간이 되네요. 눈내리는 함부르크는 정말 추웠어요. 혹시 북부지방으로 가게 되시는 분들은 저처럼 고생마시고 꼭 방수되는 따뜻한 외투 가져가세요. 우산도 좀 살이 튼튼한 거로 가져가시고요. 저는 이번에 가져간 우산 죽었어요... 함부르크는 음울한 도시지만, 그 분위기를 이겨내기 위한 화려한 쇼핑센터도 별미였답니다. 생각하면 또다시 그리워지는 시간들이에요. 아직 꼬꼬마 학부생에게 이런 큰 기회가 왔다는 것에 정말 감사하고, 앞으로 더욱 발전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